부제: 그렇게나 사랑이 위대하다고 믿지 않는 사람의 푸념
요즘 내 머릿 속의 화두.
사람이
사람을
사랑으로
구원할 수 있는가.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벅차지 않은가.
누군가를 대신해서 아파해준다는게 가능하긴 한 일인가.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이 인생의 무게를 함께 지고 갈만큼
그 자체로 힘이 강한가?
"언제나 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와
"니가 나 없이는 불행하길 바래"
사이의 차이는 어느만큼일까.
애초에, 사람이
나 이외의 타인의 행복을 기도할 수 있는 존재이긴 한가?
부모자식간에도 이제 나의 손길이 필요 없어졌을 때
박탈감을 느끼고,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때
압박감에 짓눌리는 데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는 사랑은
서로간에 노력하지 않으면
그 무게감에 눌려서 짓이겨져 버리거나
지쳐 말라버리거나 하는
다루기 어려운 마음이 아니던가.
이런 생각이 들게 한
지나간 나의 연애들 중 하나의 이야기
처음에는 그저 일 열심히 하고,
일 잘하는,
눈치 빠른 남자.
만나서 연애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저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던 야무진 남자.
허나 보이는 것과 속은 너무 달라서,
알고보면 커다란 트라우마와 결핍을 가진 남자.
그는 내게
"나는 날을 세우고 사는게 익숙한데,
팔랑팔랑거리면서
세상에 니 행복말곤 중요한 게 없다는 구는 너를 보면 힐링이 돼."
라고 말했다.
만나기 전에 장점이었던 건
만나고 난 후 높은 비율로 단점으로 둔갑이 되버리고 만다.
나를 보면 힐링이 된다던 그는
사귀고 나서는 늘 쓸쓸하다고 말했다.
꼭 애인이 아니고서라도
친구와 어딘가에 간다거나
혼자 무언가를 하는 일에
나는 익숙했다.
너는 참, 속정이 없어. 라고 말하곤 했다.
너는 참, 상냥한 말투로 쌀쌀맞은 말만 해, 라고 투덜거렸다.
자기한테 좀 잘해주면 안되냐고 묻길래
바라는게 있으면 얘기해, 해줄게. 라고 말했더니
이런게 바로 쓸쓸한거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별의 발화점이 된건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의 불행에 관해 들을 때였다.
3-4번째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고
그가 어떠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이 파악을 한 이후였다.
- 응, 그얘기 이미 했어. 나 다 알아.
힘든 얘기인 것 같은데 이제 더이상 안해도 돼.
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무안해하다가 나에게 원망섞인 말을 했다.
자신은 늘 한 발자국 더 내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데
넌 참 야속하게 군다고 했다.
얼마 후 그 연애는 끝났다.
이별은 그가 먼저 고했다.
"너의 어디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은 없어." 라는 이유였다.
자신은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아온 사람이기에
이런 눈치가 빠르다고 말했다.
너는 나한테 바라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같아- 라고 말했다.
나는 담담하게 너와 나는 마음의 속도가 다른가보다고 대답하며
그말을 받아들였다.
참 너는, 마지막까지 세련되게 군다.
는 비아냥을 끝으로 우린 헤어졌다.
나의 사랑은 언제 이렇게 세련돼졌을까.
세련되졌다는 말로 대신하는 가벼움
혹은 가벼움으로 위장해서 더이상 상처를 늘리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언제부터 나는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능숙하게 잘 숨길 수 있게 되었을까.
남에게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더이상 구질구질하고 질펀한 사랑에
몸을 내던지지 못한다.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해서 걸지도 못하고,
나를 얼만큼 사랑하냐고 앞으로는 더 많이 사랑해달라고 조르지도 못한다.
그 많던 사랑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