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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엘라 Oct 12. 2015

[2화]그리고 진짜 첫사랑 이야기 01

나는 아직도 종종 니가 궁금해. 잘지내니?

그를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막바지 쯤.

새삼스레 '이러다 정말 대학 못갈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하고,

예전에 다니던 학원을 다시 찾아가서였다.


키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귀여운 얼굴이 정말 귀여웠다. (뭔소리)

귀여움에 집착하는 지금의 취향이

그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학원에 다닌 지 얼마되지 않아 그를 보았다.

아마 첫눈에 반했던 것 같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던 그 애를 보고 옆에 있던 누가

"쟤가 ㅇㅇㅇ래~"라고 말해주었던 장면과

그가 그 때 입고 있었던 빈폴 점퍼가 아직도 기억난다.


시작은

그의 제일 친한 친구가,

나의 제일 친한 친구에 반해서

매일매일 구애를 했고

툭하면 커피마시러 나가자고 했고

놀이터에서 라면 먹자고 했고

맥주를 마시자고 했고...............;;;;

그렇게 넷이서 어울려다니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내가 먼저 사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좋아지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나름 머리도 굴렸다.

어느 날 밤 잘못 보낸 척 하려고  

"잠이 안와ㅠㅠ"같은 문자를 그 애에게 보냈고,

앗! 잘못 보냈어! 미야넹~ 이라고 보내려던 찰나에

그 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왜 잠이 안와?

로 시작된 통화는 밤새 이어졌고,

생애의 ,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고3을 연애로 가득채워서 보냈다.


만나자는 약속을 안해도 매일 매일 같이 있을 수 있었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나만을 위한 사랑이라는게

굉장히 달콤하면서도 불안하고 아픈 거라는걸 그 때 깨달았다.


나는 첫 연애였지만 그애는 아니었다.

우리 학교에 오며가며 보면서 아 예쁘다- 라고 생각했던

얼굴이 하얗고 예쁜 불어반 여자애와 그가 예전에 사귀었었다는걸 알고

나는 질투심이 아닌 박탈감을 느꼈다.


저렇게 예쁜 애랑 사귀던 애가 왜 나랑 사귀지,

남들이 알면 욕하겠지. 같은 생각을 했다.


지금생각하면 병신같지만

그땐 진심으로 괴로워했다.





우린 여고였기 때문에

남자친구가 교문 앞으로 데리러 온다거나 하는 것에

로망이 있다고들 했는데 나는 절대 죽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지 못하게 했다.


그 애가 "내가 창피해?;_;" 라고 묻곤 했지만

그 반대였다.

나에게 그가 너무나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존감 부족한 여자애의

첫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도무지 제대로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

소심쟁이 둘째딸의 포지션으로 19년을 살았던 걸 티내며

아무리 잘해줘도,

'얘가 나한테 왜이러지....얘가 날 왜 좋아하지...'

같은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자주 움츠려들었고,

연연할 자신이 없어서 자주 피했다.


그 앤 당시 부잣집 외동아들이었고,

내 입장에선 문화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엄마 아빠와 사이가 좋았다.

부모 자식간에 저런 다정한 대화가 오고 간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의 힘은 매우 강해서

움츠려드는 내 마음을 곧게 다림질 해서

옆에 있게 만들었다.


수능이 끝나고 며칠 뒤,

"엄마가 너랑 밥 한번 먹고싶대" 라는 말에

그당시 낭창미 낭낭했던 내가 했던 말은

"나 젓가락질 똑바로 못하니까 피자같은 거 먹으면 안돼?"

였다.


집에서 하도 젓가락질 똑바로 못하면

어디가서 사람들이 흉본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아서인지,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면서

그런 사소한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만난 그애의 엄마는 세련된 커트머리에

피트한 하얀 코트를 입은 미인이었다.


"아줌마가 막 졸랐어- 나도 너 만나게 해달라고- 부담스러웠지? "


젓가락질같은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다정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조금도 부담스럽지않았다.

되려 너무 좋았다.

아줌마는 딸이 없어서 이런 재미를 못 느껴봤어, 라며

백화점에 갈 때마다

립글로즈, 목도리, 지갑, 향수 같은걸 그 애편으로 보내시고, 여행에 다녀오실 때도 아들 선물은 안사도 내 선물은 꼭꼭 챙겨오셨다.


내가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을 때

둘이 맥주를 마시자고하시며,

"그래도 대학생 엄마 만들어준거 엄청 대단한거야. 나는 너네들이 너-무 대견해."

라고 말해주셔서 그 앞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컴퓨터 쓰는 법을 배웠다고 이메일을 만드셨다길래

나는 때때로 이메일을 보냈고,

매우 좋아하시며 답장을 했다.

가끔 메일함에 남아있는 그때 주고 받은 이메일들을 본다.  

그 발신자는 지금의 나와는 아예 다른 인격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밝고 사랑스럽고, 애정이 넘치는 아이가 거기 있다.


나도 용돈이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때 그 아이는 원하는 대로 용돈을 받던 애였기 때문에

악세서리, 옷, 신발까지 예쁜게 있으면 뭐든지 다 사줬다.

그 때 유행했던 떡볶이 코트, 워커, 지갑, 폴로 셔츠, 우리 강아지까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그 애가 관여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다.

나도 돈이 생기는대로 다 그 애와 함께 하는 데에 썼고,

24시간이 모자라게 붙어있었다.


어느 날,

슬픈 글을 봤다며

대구 술집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한 얘기를 했다.

미성년자를 마구 받은 지하 술집에서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문을 잠그고 영업했다가 불이 나서

어린 학생들이 많이 죽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 였다.


"만약에 너랑 있다가 그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했는데

내 옷을 다 적셔서 너를 감싸안아서 너를 살릴거야."

라고 말했다.

"그럼 넌?"

이라고 물었더니

"어차피 니가 죽으면 난 살아있어도 아무 소용없어"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렇게 일상 전부가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서로의 삶 전부에 관여하고 싶어했다.

내가 가진 행운을 그 애로 인해 다 써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둘만의 세계에서 안락했던 연애는 변해갔다.


입학도 하기 전,

2박 3일 간의 오리엔테이션부터 싸움은 시작됐다.

OT를 어디 산 속 수련원같은데서 해서

휴대폰이 잘 터지질 않았다.

심지어 우리 과는 그때나 지금이나 말술을 먹는 과여서

내가 취해서 화장실로 도망가서 잠들었고,

선배들이 열쇠를 따고 들어와서 데리고 나가줬다는 얘길

쓸데없이 솔직하게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데릴러 나온 그 애는 화를 냈고,

아무일 없었으면 됐지 뭐 어떠냐고 내가 더 화를 냈더니

들어주고 있던 내 가방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어린이집 창문을 주먹으로 쳐서 깨고,

세워져있던 차 백미러를 부쉈다.


자긴 휴대폰 안되서 2박 3일동안 한숨도 제대로 못잤는데

넌 속편하게 가서 술이나 취하고 있었냐며 주체못할만큼 화를 냈다.

생각해보니 잘못한 것 같다고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하며

하나만 약속하라고 했다.


다신 화가 난다고 해서

벽이나 창문을 치는등 니가 다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한번만 더 그러면 헤어질거라고 울면서 화를 냈다.


옆집의 창문이 깨진거보다

그 애 주먹에 상처가 난게 마음이 더 아플 정도로

나는 그 애를 사랑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학교가 개강하기 전까지 며칠 간

몇몇 남자 선배들이 문자를 보내왔다.

단순한 선배들의 친절함이었는데

그의 분노는 더 치솟았고 또다시 그렇게 화를 냈다.

답장 안하면 되지 지랄 작작하라고 같이 화를 냈다.


둘만 안전하게 있던 세계에

주변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 대학교 생활은 너무 재밌었다.

신세계를 만난 신입생환영회, 입방식 등등 온갖 핑계를 대며 매일 술판을 벌였다.

매일 싸웠다.

정말 매일매일 격하게 싸웠다.

과 MT를 갈 바엔 자기랑 하룻밤을 같이 있지 대체 왜 MT를 가냐며 못가게 했지만,

나는 갔다.

대단한 그애를 뛰어넘는 내가 더 대단한 애였다.

가는 그 날 아침까지 싸웠지만,

 나는 갔다.


결국에 그 애는 자기 학교를 나가지 않고,

나랑 같이 등교해서 우리 학교 앞 피씨방에서

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에 이르렀다.


결국엔 나는 졌다.

질풍노도의 1학기가 지나고

2학기부터는 그 애도 나도 거의 학교에 나가지 않고

둘이서 놀았다.

학교 선배들이 왜 학교에 안나오니,

무슨 일 있는거냐고 메일을 보내올 정도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 당시에 한메일이 유행했는데

중학교 동창인지가 "나 기억하려나?" 라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내 이메일 비밀번호를 알고 있던 그애가

나보다 그 메일을 먼저 확인했다.


답장하기만 하라고 으름장을 놓아서

그것까지 싸우고 싶지 않아서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회와 단절을 시키면서도

그 애는 '너는 왜 내가 제일 우선순위가 아니냐'고 화를 냈다. 그에게 아무리 우선순위를 두어도 한 번 다른 곳을 가면 또 싸워야되는 게 지긋지긋해서

나는 싸울 때마다 "이럴거면 헤어져"를 시전했다.


아,

그 애의 어머니가 메일에 그렇게 썼더랬다

"어머 니네 싸웠니. 나는 우리 아들 우는 거 처음봤다야."


그 끝나지 않을 싸움에 나는 지쳐갔다.

그런 아슬아슬한 날들이 계속 되던 어느 날,

엄마가 문득 물어본 그 애의 안부에 대답을 하려던 찰나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냥 잘 지낸다고 하려고 했는데,

후두둑 눈물이 났다.


엄마는 놀란 얼굴로 진지하게,

스무살 애들이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야지

눈물이 나는 연애면

...그건 그만 하는게 맞지, 라고 말했다.




그만 이라니,

끝 이라니,

설레임에 몇날 며칠을 날 잠못이루게 했던 내 첫사랑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첫사랑이

끝,나야한다니.


단단하고 몽글거리던 사랑은

집착과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차서  

빛을 잃고 비틀거렸고,

한 번 균형을 잃은 마음은 겉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자주 격하게 싸웠지만

헤어지던 날은 사이가 좋았다.

둘이 동네 술집에서 술도 마셨고,

그때 유행하던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둘다 아주 예쁘게 나왔고,

그 사진을 내 리즈시절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은 하나둘씩 군대에 가기 시작했던 때다.


"나 군대가면 기다릴거야?"

라고 "안주 뭐 먹지?" 정도의 무게감으로 그가 물었는데

순간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당황한 그가 왜 울어, 울지마, 하고 그가 더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순식간에 꺽꺽 거리며

"미안해 못 기다릴거같아."

.

.

.

"우리 이제 그만하자."


그날의 기억은 세월이 아주 많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에 싸웠다하면 헤어져를 시전하던 나였기에

내 이별 통보에도 처음에는 아- 난 또 뭐라고.


아 뭘 또 그렇게까지- 야 됐다. 치사해. 기다리지마.

각오해, 내가 먼저 군화 거꾸로 신을 거야


같은 말을 주절거렸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니 그제서야 그의 얼굴이 식어갔다.


내가 진심이라는 걸 받아 들이기 까지

시간이 걸렸다.


집앞에 찾아와서 울면서 내가 사준거 다 내놔!!!!라고 해서

정말 다 가지고 나가서 건네줬더니

그 박스를 다 내던지며 화를 냈다.


며칠에 걸쳐 빌기도 하고

화도 내고

울어도 했지만


나는 바로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내 삶 전체에 관여하고 있던 그 애를 떼어냈다.

그렇게나 잘해주시던 그 애의 어머니에게 일언반구

귀띔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너무 어렸고,

그 사랑이 너무나 지긋지긋했다.



_(1)부 끝,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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