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었던 고흥, 그곳 거금도 한적한 섬마을엔 몽돌해변이 있다.
가끔 삶에 지치거나 무언가 위로가 필요할 때 다녀가는 그 자리엔 언제나 그런 마음을 담아줄 어미의 품이 있었고 멍들어 상처 난 가슴을 비울 적당한 세월의 멈춤도 있었다.
거금도 둘레 길을 휘감을 듯 놓여있는 오천몽돌해변, 모나지 않은 둥근돌들이 모래가 자리할 곳을 대신 차지하며 저마다 하나씩의 사연을 품은 양 모양뿐 아니라 파도와 시름하며 뱉는 작은 속삭임마저 모두가 제 각각이다.
오늘 그곳에 내가 있다.
가을이 점차 겨울을 닮고 있다.
성급히 찾은 서리가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잔뜩 파스텔로 그려진 세상의 색감마저 차가운 공기로 덧칠되는 모습이다.
밤새 지난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눈을 내민 밤하늘엔 달빛마저 반 토막이 잘린 채 그저 차가운 기운이다.
이른 아침, 무거운 몸을 차에 실었다. 서울서 학업 중인 아들 녀석을 만나러 간 아내가 안부를 물어온다. 아무 일 없었다는 말에도 눈치 빠른 아내의 목소리엔 염려가 실렸고 그런 염려를 뒤로 하고 주섬주섬 몽돌을 찾기로 했다.
차가운 날씨였지만 잠시 쉬어가려는지 바람은 조용한 미소로 아침 방문객을 맞아주었다. 다만 철없는 해무海霧만이 게으른 걸음으로 한참 동안 어깃장으로 머물다 뺨을 훑고, 보이지 않는 파도소리만 하염없는 속삭임으로 몽돌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름 평안했다. 밤새 마음을 어지럽히던 꿈을 잠재울 적당한 고요가 사뿐히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밤, 마음을 어지럽히는 악몽의 험한 흔적이 가슴 언저리에 자리했다.
책상이 빠지고 우두커니 바라본 사무실 공간엔 그간 지나온 삶의 상처가 A4용지의 온갖 날카로운 각角으로 세워져 발길을 옮기기조차 두렵게 사방에 뿌려져 있었다. 회사동료들의 힐난이 야릇한 미소로 얼굴에 그려졌고 그 비웃음에, 그저 그런 위로의 단어들에 귓가는 아직 얼얼하기만 했다.
서울에서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고흥을 찾아 귀촌을 한 지 4년이 되어간다. 몸이 아픈 관계로 본의 아니게 퇴직을 했지만 20년을 회사를 위해 몸을 바쳐 일했었고 동료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고 내려왔기에 모든 것을 다 비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머지 삶을 살아갈 작은 터전을 마련했고 그간 작은 텃밭이며 화단을 가꾸며 미래의 인생을 설계해 왔다. 기왕이면 내가 태어나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던 서울과는 먼 곳에서 또 다른 꿈을 꾸기로 작정했기에 하루하루가 봄날 새순 돋듯 새롭게 피어나는 것 같았다.
한 해가 지나고 세월 지나 몸도 예전과 달리 많이 좋아졌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무언가 일에 대한 욕심도 하루가 다르게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욕심과 세상에 대한 미련들이 요즘 꿈속의 나를 괴롭히고 이리 못된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것만 같다.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몸에 번지기 시작한 건 직장을 다닌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의사의 소견을 빌리자면 그저 조용한 곳을 찾아 심신을 보살펴야 회복이 가능하다고 하니 한창 일할 오십 초반에 그 무슨 사치였던가.
그나마 살아남으려는 오기가 생겼고 그간 인생의 모진 바람에도 잘 버텨왔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은가.
전쟁터 같은 수많은 시험에서 살아남았고, 온갖 수고로 날카롭게 각角을 세우며 나를 세상에 알리기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을 토해냈던가.
바람 없는 날, 저만의 의지로 밀려오는 파도가 새삼스럽게 보인다. 그를 품으로 받아들이는 몽돌들의 자작거림도 또 하나의 의지로 들려온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락받아 이리 둥글게 변해야 했는지, 모난 각을 하염없이 깎으며 주변 돌들과 어우러졌는지, 그저 점잖은 포기에서 비롯된 건지, 아님 처절한 타협의 결과인지.
나를 둘러싼 둥근돌들이 마치 지친 나그네를 위한 잔치를 벌이듯 자잘한 건 자잘한 대로 제법 몸집이 큰 것은 큰 대로 잔칫상을 차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릴 적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생각났다. 둥글고 큰 두레상이 차려졌고 모여든 우리 오 남매의 철부지 다툼에도 그저 웃음으로 밥그릇을 채우시던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 그래, 그때는 그랬다. 형제간 철없이 싸우기도 하고 울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지만 어머님의 품속에서 언제나 우리는 하나였다.
전라도가 고향이신 어머님께서 혼수품으로 챙겨 오신 작은 소반小盤도 떠오른다. 차려진 밥상 한 구석을 차지한 소반 위엔 구수한 엄마표 숭늉이 우리를 기다렸고 이제야 생각하니 어여쁜 기억마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치 지금 자리한 몽돌해변의 수많은 돌들이 파도에 의해 다듬어진 것처럼!
불혹을 지나 얄궂은 50을 훌쩍 넘긴 지금 이 자리.
그간 얼마나 많은 갈등들을 각으로 세워 왔는가. 아니 그보다 더한 비수를 품에 안고 살아왔는가. 성에 안 차면 버려야 했고 마음에 안 들면 외면으로 돌아서야 했던 그간의 내 삶엔 얼마나 많은 뾰족한 각角들이 세워졌을까?
남들과 싸워 이겨내야 했기에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고, 남들을 배려한 따뜻한 경쟁이 아니기에 날카로운 마음을 휘두르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진 않았는가.
돌이켜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온다. 나로 하여금 다친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그간 그리 살아왔기에, 아니 그리 살 수밖에 없었기에 내가 던진 빗장에 스스로를 가두고 이리 꿈속에서 조차 괴로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차 해무가 걷히기 시작했다.
닫혀있던 바다가 열리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파도의 속삭임이 눈에 들어온다.
몽돌들의 나지막한 호흡이 잔잔히 전해진다.
심장을 울리더니 눈을 지나 이내 귓전에 들려온다.
‘네 기억 속엔 어머님의 모나지 않은 둥근 배려를 담은 사랑이 있고,
지금 이 자리엔 너를 보담을 너른 바다가 있지 않느냐고…….
하여 길들여지지 말고 오랜 세월 시련을 이겨 다듬어지라고 ‘
오늘 그 자리에 내가 있다.
‘모난 것에는 부딪침이 많다’ 말씀하셨던 어미를 닮은 이 너른 바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