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무기력의 이름들

by 고양이

가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첫째, 조금의 노력으로 터무니없는 결과물을 가져가는 이들.

그들의 노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가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가 더 오래 버티고, 더 많이 고심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건 억울하다.


둘째, 충분히 논의한 뒤에도 결국 정해진 틀로 계획서를 짜는 임원들.

아마 그들의 경험과 선견지명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이미 정해진 답이라면

우리가 던졌던 질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셋째,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일상.

이 반복은 삶을 보호해 주는 안전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득 나를 가두는 울타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울타리 안에 주저앉아 다른 일상들을 꿈꾸지만 이 안의 벽은 너무 견고하다.


넷째, 혼자 먹는 식사는 편안하지만,

4인용 식탁 위로 오가는 젓가락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함께하는 식사가 주는 온기보다 익숙해진 위생관념과 작은 결벽이 나를 주춤하게 만든다.


다섯째, 시간을 되돌아보았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 때.

분명히 버텼고, 견뎠고, 애썼는데도

무언가 남아있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이 바람에 도로 위를 굴러가는 검은 비닐봉지처럼 느껴졌다.


여섯째, 글로는 표현할 수 있지만 전할 수 없을 때.

이 문장이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의심 끝에 남는 건 늘, 조용한 자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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