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 슬픔은 내 것이니까  

by 고양이

너무 오래 아프면 위로받는 것도 불편해져서 결국 그걸 견디는 법을 배워버린다.

이걸 회복이라고 부르는지, 망가짐이라고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무뎌진 걸까. 아니면 스스로의 감정에 작은 보호막을 만든 걸까?


위로는 ‘서로를 채워주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과정’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 부족함 속에서 어떤 사람은 배우고, 누군가는 버티고, 또 다른 이는 흘려보낸다.


나는 잊고 있었다.

감정을 나누는 모든 사람은 그만큼 위험도 나눈다는 걸.

누가 이기고 손해 보는 식의 게임이 아니라,

양쪽 모두 얻었을 수도, 잃었을 수도, 소모됐을 수도 있다. 그 셋 모두 일 수도 있고.


하지만 나처럼 그도 살아가며 부딪치고, 아파하고, 회복하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까 너무 그에게 신화처럼 굴지 말자고 항상 다짐했다.


나만 배운 것도 아니고 그 만이 잃은 것도 아니다.

각자 방식대로 겪고,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흩어졌을 뿐.

그러니까 이제 그를 죄책감의 얼굴로 삼지 않기로 했다.
그건 그에게도 나에게도 불공평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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