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견디는 시간

by 고양이

복도 창가에는 늘 바람이 들었다.

난방은 교실만을 따뜻하게 데웠기에 복도에는 계절이 항상 반쯤 빨리 왔다.

준호와 태경은 그런 복도를 좋아했다.

간섭도, 질문도, 어른의 목소리도 닿지 않는 곳.

조금 더 덥거나 추워서 사람들이 서둘러 지나치려는 곳.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마치면 아이들은 서둘러 학교 정문을 빠져나갔다.

'학원을 가기 위하여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무엇이 그렇게 바쁠까.'

책가방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준호와 태경은 창가 근처를 맴돌았다.


준호는 가방을 복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책을 꺼내며 말했다.

“야, 역사책 이거 공부하면 현실에서 쓰이는 데가 있을까?”


태경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글쎄 시험 아니면 딱히 없지 않나?”


둘 사이에 잠깐의 공백이 흘렀다.

바람이 다 닫히지 않은 창문 틈으로 흘러들어 한기를 들게 했다.


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부라는 건 그냥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들어. 의미는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버티는 연습 같은 거.”


태경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거 원래 네 성격 아님?"


준호는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그게 내 성격일까? 아니면 학교가 그렇게 만든 걸까? 맨날 ‘의미를 찾아라’, ‘동기부여’ 이러잖아.”


태경은 바닥에 발을 툭툭 굴렸다. 그 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 바닥을 따라 작게 울렸다.

“근데 말이야. 견딘다는 게 그냥 따분함을 참는 건 아닌 것 같아.”

태경의 작은 목소리에 어른의 기운이 살짝 걸린 듯했다.

“그 시간 속에서 뭐라도 붙잡으려는 거 아닐까? 안 그러면 그냥 사라져 버리잖아.”


준호가 숨을 들이켰다. 숨결 때문인지 창밖 은행나무의 잎사귀가 후드득 떨어졌다.

“맞아. 아무 의미 없어도 그걸 그냥 흘려보내기엔 왠지 좀 아깝지.”


태경이 웃었다.

“야, 우리 되게 어른 같다.”


“그러게. 근데 어른들은 이런 얘기 잘 안 하지 않나.”

“어른 되면 이런 말들이 필요 없을까?”

둘의 시선이 동시에 어깨를 움츠리고 걸어가는 창밖 사람들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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