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에넥도트
마지막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어제는 새벽 6시에 퇴근을 했고, BM오빠의 수고했으니 오늘은 푹 자도 된다는 말에 나역시도 오빠나 잘 자라고 했지만 사실상 난 잠을 자지 못했다. 목욕을 하는 사이에 두 사람으로부터 내 업무용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남아있었다. 둘 다 그의 어머니였다. 새벽에 어쩐일이셨을까. 아마 어머니 역시도 잠을 설치셨지 않았나 싶다. 옛날에 셋이서 놀러갔던 일본의 프라네타리움에서 처음 들었던 히라하라 아야카의 미오 아모레를 다시 듣다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사실 나 밥을 차려 먹으며 신문을 뒤적일 때까지만 해도 조금도 달라진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좀 더 사실을 말하자면 이 순간 역시도 좀처럼 깨닫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마 내가 지인들과 연락 주고 받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뜨거운 열기에 핸드폰이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 어벙벙한 것은 3주 전 나는 지인용 폰을 없애 버리고 업무용 피쳐폰-그러니까 나와 그, BM오빠 그의 가족들만 저장되어있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컴퓨터에 앉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도 한 몫했다.
평소에 누군가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그냥 신경 안 쓰고 사는 편이지만 그런데 오늘은 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듣는 노래는 너이며, 잠들기 전에 취침 예약까지 해놓고 듣는 노래 역시 너이다. 네 노래를 들으면 네가 곁에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미안하다고 사죄하면서 멋쩍게 웃는 네 목소리가 들리고, 네 모습이 보인다. 나는 토라져 있는 척을 하지만 사실은 웃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네 얼굴을 올려다 보고 힘내자고 말 할 것이다. 덤덤하게 셋이서 함께 구호인 마냥 자주 말하는 "끝까지 같이 가보자"라는 말을 할 것이다. 이것은 사랑 고백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덥석 안아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가의 그 때처럼 울어버리겠지.
너없이 가능할까 싶던 것들 결국 다행히 다 이루어졌다. 하나의 세계관을 관철 시키기 까지 셀 수 없는 시간이 걸린단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그것을 세상에 보내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가시돋힌 시선으로 여전히 바라보지만 결국 우린 해냈고, 우리가 목표 삼았던 한계를 결국 넘어섰다고 우리는 자부한다. 물론 이쯤되면 익숙해질때도 됐건만 사실은 아직 아픈건 사실이다. 여전히 그 사람들이 스쳐가듯 내뱉은 한 마디에 그대로 격침당하지만. 그래, 너넨 너네대로 행복해라. 우린 지금 이게 우리대로 행복한거니, 앞으로도 우린 우리대로 행복할테니.
처음에 진실을 알고 원망하듯 울었지만 결국 지금은 멀쩡히 잘 지내고 있는거 처럼 지금 그 격침당하는 순간들도, 그렇게,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때는 그런 기분마저 익숙해져 있을테고, 그러면 거리를 걷다가 흘러 나오는 음악에 문득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조그만 음악소리 사이에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귀기울이지 않아도, 담배연기 사이로 의례히 떠오르는 말들을 다 기억해내지 못해도, 기억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지금 선 자리에서 조금씩 걸음을 옮겨도, 그 때는 정말 아무렇지 않을 날이, 언젠가는 오지않을까.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시시껍절한 아침 드라마에 눈물 바람하는 아줌마마냥. 그냥 나는 우리 셋의 인생은 그렇게 반복되었으면 좋겠다. 너는 우리가 너의 옆에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기만 해라. 우리는 두손 두발 걷고 다 제치고서 네가 달려갈 수 있지만 겉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으로 말할 거니까. 우리의 모든 것 너의 것이고, 너의 것들 모두 우리 것이길. 그리고 잠이 들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기운이 그대들에게 늘 압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