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가르쳐 준 ‘나 자신’의 발견.
너무 바쁜 업무에 지쳐 한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때문에 내가 외로움과 친구가 되면서 어떻게 혼자로도 충분한 삶을 지내 왔는지 기억을 더듬는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우선 가장 처음으로 도전했던 것은 ‘다이어트’였다.
당시 나의 몸무게는 74kg였는데, 사실 이 정도면 그렇게 살이 찌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대로 게으른 삶을 유지했다가는 80kg, 더 나아가 90, 100kg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기에 다이어트를 결심할 수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패션과 데일리 룩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골목에서 혼자 전신샷을 찍으며 그날의 데일리룩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기에, 20대 시절 50kg대를 유지했던 내가 배불뚝이에 펑퍼짐한 몸매로 전신샷을 찍은 모습은 마치 코메디가 따로 없다 생각한 것도 있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운동에 하나도 연이 없던 나는 약 3달간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을 나의 미래를 위해 이 악물고 도전했다.
하루 1시간 정도의 운동, 그리고 여기에 식단조절을 병행하는 것.
운동을 지지리도 싫어하니, 게임을 이용해 운동을 하면 동기부여가 더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링피트’라는 게임을 구매했고, 비싸게 주고 산 게임 소프트인데 끝장은 봐야겠다는 의욕이 다행히도 앞섰다.
식단은 초반에는 닭가슴살을 위시한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유지해 왔으나 닭가슴살만으로는 도저히 식탐을 느낄 수 없어 유튜브를 통해 찾아본 결과, ‘닭가슴살 또띠아’라는 레시피를 발견하여 한 달에 보름 이상은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다행히도 식단 유지를 쭉 유지할 수 있었다.
식탐이 많고, 운동을 극도로 꺼리는 나에게 이 2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겨우 결심한 다이어트인데 꼴랑 며칠 하고 힘들다며 포기하는 것도 영 모양새가 빠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은 한 매일 이 스케줄과 식단을 지켜 왔다. 운동은 꾸준히 해야 살이 빠진다 해서 한 달 후에 체중이 별로 내려가지 않으면 포기하고 싶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앞선 상태였다.
다행히도 한 달의 노력 끝에 체중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운동 자체를 안 하던 몸이라 그런지 생각 외로 많이 줄어드는 몸무게 변화에 나 자신도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3달을 내리 쉼 없이 해 온 결과, 무려 12kg를 감량해 목표로 하던 60kg대 초반의 몸무게를 이룰 수 있었다.
사실 이런 다이어트 과정은 일기를 통해 그리 길게 쓰고 싶은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태여 어떻게 다이어트를 했고,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기록한 것은 최소한 내가 어떻게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과를 통해 다음 노력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내 글을 보는 사람에게 확실히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이어트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내가 해 왔던 노력들은 다른 이들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닐지도 모르는 노력들이었다.
본래 일본어를 전공했던 내가 비싼 등록금을 내어가며 공부했던, 그나마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재능을 잃고 싶지 않아 일본인 친구와 채팅을 하고, JLPT N1급 갱신과 JPT 점수 상승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일본어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독해했던 시간들은 누구나 다 시간 내어 공부할 수 있는, 평범하고 사소한 노력이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이 역시 내가 그나마 잘한다고 여겨왔던 것. 상세한 내용은 부끄러워 설명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나는 ‘장편소설’이라는 것에 도전했었다.
주인공과 주변인물에 나 역시 동화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 보는 것은 생각보다 결말보다 과정이 어려운 것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납득이 가는 결말을 맞이하는 것. 그것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가는 사이에 나는 ‘창작의 고통’ 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는, 힘들었지만 무언가 눈으로 보이는 것을 하나 세상에 남길 수 있게 되었다는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아직 부족한 나의 필력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잡을 수 없었고 아무런 반응과 응원도 얻지 못한 채 그렇게 나의 첫 장편 소설은 묻혔지만, 나는 그것을 전혀 의미 없는 헛된 행위라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 시절의 무관심을 발판 삼아, 조금 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공감시킬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들고 일어나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미래가 보이지 않아, 이대로 하루 종일 잠들어 현실을 잊고 싶다 생각할 때에도, 억지로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의 인파라는 공기 냄새를 맡고, 분위기 좋은 카페 대신 저렴한 가격의 무인커피숍에 가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찾는 과정은 이 역시 별 것 아니게 느껴지더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어두운 방 안을 빠져나와 밝은 바깥으로 나가게 해 주는 ‘용기’를 갖게 해 주었다.
외로움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열심이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직 멀었다고 대답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노력에 미친 자들이 많은가.
그에 비하면 내가 하는 노력은 타인의 코웃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노력을 포기한 채 현실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사소한 노력이라도 지푸라기 움켜쥐듯 도전해 왔던 나 자신을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이라도 칭찬해 주고 싶어졌다.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이 세상에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발악했기에 , 지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겼기에.
사실 새로운 직장에 취직한 후, 나는 우울에 빠져 나 자신을 부정해 왔던 아픈 시절을 줄곧 부정해 왔다.
방구석의 폐인으로 살았을 시간에 무엇 하나라도 더 해 두었으면 내 어깨가 아직 이렇게 움츠러든 채로 있지는 않을 텐데… 하고.
하지만 최근 기록병에 빠져, 지난 5~6년간의 투두를 기록하고 자필로 일기를 쓰거나 과거의 일기를 보면서 새삼 다시 깨달은 것은 ‘나는 그때 가만히 누워있지만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의욕을 잃어 마음이 병들었던 날에도 바깥으로 나가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겨우 감량한 체중을 위해 저 먼 곳까지 산책을 나갔던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쓸데없을 정도로 사진으로 무언가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과거에 남겨 준, 소중한 나의 기록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움츠러든 어깨로 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나, 열심히 노력은 한 거 같아.”
“그래. 잘했어.”
외로움과 나는 지금도 쭈욱 친구다.
그리고 그 외로움과의 생활 속에서 나는 지금도 혼자만의 할 일을 찾는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