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외로움이 나와 친구가 되자고 했다.
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외로움과 친구를 먹은 사람이다. 물론 지금도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몇 없는 좋은 친구들이 이런 얘길 들으면 많이 서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외로움과 친구가 된 것은, 친구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은 아니다. 매일같이 친구와 만나 신나게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물론 가끔 외지에서 온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그간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술 한두 잔에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서로를 의지하는 행동은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 내 인생의 낙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공들여 만든 인간관계도 의도치 않게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경우도 왕왕 존재한다.
인간관계에 집착하여 얻은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실망뿐이었다. 평생을 친구로 지내고자 했던 인간조차 어이없고 하찮은 이유로 연락이 두절된 이후로는 정말 이 세상에 나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에 갈증을 느끼던 와중, 어느 날 외로움이 내 심장을 똑, 똑 하고 두드렸다.
'나랑 친구 하자'
그 이후로 나는 인간관계에 의한 집착, 미련을 버리는 과정에 들어갔다. 사실 내 MBTI는 단 한 번도 앞 글자가 E가 되어본 적이 없다. 줄곧 I였던 나에게 외로움의 친구 신청은 매몰차게 거절할 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친구나 지인의 눈치를 보며 나를 죽이는 하루하루에서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가끔 가지면 자유롭지만 장기화되면 될수록 외로움에 휩싸이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또는 해보고 싶었지만 사정으로 인해 계속 미루었던 것을 해 보면 좋더라.
외로움과 친구를 갓 먹었을 적에는 게임, 유튜브,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매체 보기 등으로 지냈었는데 이상하게 조금씩 외로움이 내 명치를 툭툭 건드렸다. '좀 더 건설적인 시간을 보낼 수 없냐'라고 말이다.
확실히 도파민에만 치중하던 나의 생활은 외로움이 보기에 쉬이 우울감을 주는 행동이라 여겼던 것 같다. 도파민으로 현실을 잊는 건 잠시간이었고, 그 후에 밀려오는 것은 후회와 죄책감을 동반한 피곤함과 우울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외로움이 같이 카페나 가지 않을래? 라고 했다. 나는 본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혼자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했으니 좋은 생각이라며 따라갔다.
그런데 그 바깥 외출조차 쉬이 피로해져 카페에서 공부나 책 읽기, 기타 등등을 하려고 했던 나는 의자에 앉은 지 10분 만에 밀려드는 피로함에 테이블에 엎드려 쓰러지듯 잠들고 말았다.
아무래도 우울감이 바깥세상 구경조차 나가기 싫을 정도로 문드러져 버린 듯했다.
외로움에 익숙할 성격이라 여겼는지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울이라는 새 친구가 생겼고, 우울은 나를 나태한 사람으로 만들려 온갖 감언이설을 속삭였다.
밥 먹으면 배부르지? 드러누워 자라.
이 게임 너무 재미있지 않아? 밤에 하면 도파민이 더 솟아날 거야!
이런 식으로.
덕분에 우울과도 덩달아 친해지면서 모든 것이 다 무기력해졌고, 결국 나는 몸무게가 20대 초반에 비해 무려 15kg나 더 늘어나 버렸다.
그나마 내세울 것이 뚱뚱하지 않은 야윈 몸이라 여겼건만 그 조차도 내세우지 못하게 되니 외로움조차도 이제 그만 우울이랑 절교하라며 손짓을 했다.
그 뒤로 나는 우울과 절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것 같다. 외로움은 거듭 미안해하며 나에게 살을 빼 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운동의 '운' 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나에게 외로움의 권유는 너무 싫은 잔소리 같았다.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속에 기생하는 것. 외로움이 그렇게 말을 건네 온 것은 곧, 내가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겠다는 내 본심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이지만 한 몸. 나는 결국 외로움과 생각이 같았고, 나는 '그' 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그 말을 승낙했다.
그렇게 외로움과 절친이 되기 위해 내가 그간 하지 못했던 일들을 별거 아닌 것부터라도 하나씩 도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