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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람은 땅만 보며 걷는다.

by ISKIM

중학교 2학년 생활기록부를 우연히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당시 나의 신장은 겨우 147cm였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조례 시간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맨 앞줄에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학교에서 조례를 할 때는 키가 작은 아이를 맨 앞줄에 세우고, 키가 큰 아이를 맨 뒷줄에 세웠었기 때문이다.

뭇 남자들의 가장 큰 컴플렉스라는 '작은 키' 라는 핸디캡을 시작으로, 나의 어깨는 매번 쪼그라들었다. 그런 학창시절 속에 살아왔던 것 같다.

평균 이하의 외모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외모가 워낙 업신여기기 좋은 외모였던 모양인지 나는 학창시절 온갖 수모를 당하곤 했다. 만만한 외모에 여성스러운 하이톤의 목소리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모양인지 쉬는 시간이 되면 그들은 나의 바지와 팬티를 벗겨 '그것' 이 달렸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것에 치욕스러움을 느끼며 점점 두 어깨가 움츠러 들었고, 그 움츠러든 어깨로 터덜터덜 걷는 나를 일면식 하나 없는 한 학년 위의 이름 모를 선배가 의도적으로 어깨빵을 치면서 '찐따같이 생겼네' 라며 비웃으며 지나가던 그 날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떠오른다.

사람이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등교길과 하교길을 걸을 때 앞을 보며 걷지 않았다.

오로지 땅만 보며, 사람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도록 걸었던 것 같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나의 인생사는 사실 남들 앞에서 들추고 싶지 않았지만, 문득 나는 어떤 극작가가 남긴 말을 기억해 냈다.

'작가는 경험을 파는 일이다.'

경험을 판다. 그만큼 자기 자신의 지나갔던 인생사에 대해서 진솔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잊고 싶은 기억이라도 홀로 한밤중에 불을 끄고 어둠 속에 누워보면 잊고 있던 일들조차 다 떠오르게 되곤 한다.

사실 상기의 에피소드들 조차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갓 떠올린 기억들이다. 그만큼 잊고 싶었던 기억이었던 건지,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잊혀져 있었던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굳이 그런 아픈 과거를 들추어 글로 드러내는 이유는 나도 나 자신에게 한 번, 아니 그 이상은 진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숨김없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고 지금부터 보여줄 것들이다.

그렇다고 나의 상념들이 담긴 일기에 불행의 나열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지금의 나는 풍족하지 않아도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글귀를 한 자 한자 타이핑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하루하루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오늘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다 같은 하루의 경과를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오늘 당장이라도 내가 이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가려워 잠이 들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 될 때, 그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태블릿PC를 통해, 시간의 여유가 있는 날이면 자필로 일기를 쓰는 것에 나는 푹 빠져있다. 글이라는 것은 한 번 펜을 놔 버리면 그 감각이 다시 생생하게 돌아오지 못하는데 요즈음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행복했던 감각들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그 행복한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 나는 용기를 내어 사람들 앞에서 다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일기의 제목인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는, 굳이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억지로 공감시키지 않겠다는 나의 속좁은 고집이 내포되어 있는 제목이다.

다만 나의 경험과 그 경험으로 느낀 깨우침을 폐 깊숙이 뒤적 뒤적 뒤적거려 나온 결과물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도 나의 일기를 연재하면서, 딱 3가지 약속을 하기로 했다.

1. 쓰고 싶을 때만 써라.

2. 너무 길게 쓰지 마라.

3. 타인을 의식하지 말고 써라.

억지로 쓰는 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장황하게 쓰는 글은 내 진심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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