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cula

내가 되지 않는 것들의 밤

by 구시안

나는 나를 살고 있었으나
동시에 살지 않은 나에게서
조용히 빚을 지고 있었다.


어떤 밤은 너무 일찍 도착해서
내가 아직 나이기 전에
이미 나를 지나가 버린다.


그 밤 속에서
나는 한 번도 선택하지 않은 길들을 본다.
그 길들은 나를 기억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잊은 것들에 의해
서서히 규정된다.


그는 거기 있었다.
이름이 있기 전부터
형태가 있기 전부터

나는 그를 "Dracula" 라고 불렀지만
그 이름은 그를 설명하지 못하고
단지 나의 무지를 고정시켰다.


그는 나의 밖에 있지 않았다.
내가 비워둔 자리마다
그는 이미 앉아 있었다.


나는 살아 있는 쪽에 서 있으려 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끝없이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나는 점점 덜 선택했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형태를 얻었고
나보다 더 명확해졌다.


그는 그것들을 모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되지 않은 것들의 총합에게
조용히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고 말했으나
그 말은 나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미
그의 것이었으므로.



밤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나는 늘 그 뒤를 따르는 사람처럼, 이미 누군가 점유한 공간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곤 했다. 그곳에는 침묵이 있었고, 침묵보다 더 오래된 어떤 의식이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면서도, 분명히 죽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존재를 드라큘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것이 정확한 이름인지, 혹은 내가 붙인 임시의 명칭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름 없이 존재할 때보다 이름을 가졌을 때 더 선명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름은 실체를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실체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그는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나 어둠은 그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드러내고 있었다. 빛이 사물을 설명하듯, 어둠은 그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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