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동안에만 존재하는 나를 위하여
마음 깊숙이
어느 아름다운 날이 이어진다.
여름과 숲이 조화롭고
강과 홀로 흐르는 선율에
우리의 사랑 그건 삶에 대한 예의처럼
치러지는 현명하지 못한 관계의 시작처럼
반박하는
신음하는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오의 샘물속에서 죽어가는 장미보다
심장 깊숙이 시드러 있는
모든 하늘을 품은 밤의 심장을
초월한다.
기쁨의 화살이
그 시간을 죽이고
희망과 후회도 죽이고
남아 있던 부재를 죽였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가 넘치고
건물 밑으로 추락하는 것이 많아지는
은밀한 이야기
헛소문
실제로는 그럴 배짱도 없으면서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
가엾은 창조물의 만족들.
땀투성인데
서로를 긁어주듯 지껄이는 농담을 뒤로하고
극도로 무가치한 담배를 물고 옥상에 올라앉아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에, 욕망의 축축한 껍질과 부서진 감정의 잔여물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모습이 일렁인다. 동물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다가
자판기의 숨은 비타민을 뽑아 들고 다시 입에는 담배를 물었다. 글을 쓰는 동안에만 지속되는 명료한 정신으로 기록한 이 글들을 다시 읽어보게 될 순간이 온다면, 또다시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이다.
이 글은 대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쓰는 것이냐고.
사람들의 흔적을 살피는 사람처럼
내 위에서 스스로를 굽어보면, 나 자신이 다른 사물과 더불어 혼란스럽고 희미한 풍경 같다. 항상 긴 잠이 아닌 선잠에서 깨어난 기분처럼. 내 몸을 감싼 피부마처 나를 짓누르는 듯한, 도달하는 결론마다 목을 조른다.
그림자가 반쯤 진 잔디밭을 바라보다가
햇빛의 여러 가지 빛깔과 초록색이 되게 하는 구름의 움직임처럼, 내 몸의 한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옮겨간다.
어깨의 움츠림은 없다.
지금은 비록 불완전한 내 글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먼 훗날에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면
내가 이룰 수도 있었을 완벽함이 아니라
감정에 흘러나오는 눈물에 더 감동받게 되길 바랄 뿐이다.
완벽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울 일도 없었겠으나,
그랬다면
더 이상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기에 인간이다.
다 큰 성인이 사랑할 수 있지만
신은 사랑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다.
고귀하고 신성한 수줍음을 사랑한다.
약간의 독이 타진 물을 마시는 것처럼
만성적인 무기력에도
약간의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의 언어로 작은 영혼을 움직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믿음과 희망을 빚어내고
행복하다고 믿는
가난한 잡의 아이들처럼
케이크의 껍질을 얇아 먹을 때
그 아껴먹기 위한 몸부림처럼
인생이고
문명이고
상관도 없는 이름을 부여하고 나서
어떤 결과를 꿈꾸며 산다는 것이
지독하다.
햇살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결론도 목표도 없는 즉각적인
인도주위에 압도된다.
마치 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자비심마저 몰려온다.
냉정한 자비심으로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끌어안는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걸린 실로
조종되는 꼭두각시들을.
나는 나를 꺼내 보인다,
피부를 벗기듯이,
아직 식지 않은 감정의 내장을
빛 아래로 끌어올린다.
빛은 잔인하다.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빛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 아래에 서 있기를 멈추지 못한다.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나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오해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문장이 되고
문장은 나를 배반한다.
어떤 날에는
내가 쓴 단어들이 나를 떠나
다른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
나는 그것을 읽으며 묻는다.
이건 누구의 고통인가.
피는 흐르지 않는다.
대신 의미가 흐른다.
그리고 의미는 언제나
잘못된 방향으로 번진다.
나는 나를 해체한다.
눈물은 그 해체의 부산물이다.
완벽하지 못한 구조가
스스로를 버티지 못할 때
흘러나오는 투명한 균열.
나는 알고 있다.
완벽했다면
나는 침묵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해서
망가진 상태로 남는다.
쓰는 동안만 살아 있는 존재로.
거울 속의 나는
항상 반 박자 늦게 움직인다.
그 미세한 시간의 틈에서
또 다른 내가 나를 비웃는다.
“너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흘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좋다.
나는 흘리는 쪽을 택하겠다.
넘쳐서 사라지는 것들을 위해,
형태를 가지지 못한 채
공기 속으로 증발하는 나를 위해.
보여준다는 것은
결국 사라지기 위한 준비다.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나를 잃어버리며
조금씩 더 정확해지고 있을 뿐이다.
보여준다는 것.
차라리
두 팔로
얼굴을 감싸 안고
두 눈을 가린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