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시간은 그런 것이다

당신을 열고 닫은 밤

by 구시안


당신이 문처럼 열릴 때
나는 그 틈을 따라 들어간다.


중앙에 서서
굳은 눈꺼풀을 바라보며
말을 남기고
이름을 새기고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잊지 말라는 말은
나를 붙잡지 못했고
나는 점점
미루고 침묵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누군가에게 자라난다는 말은
늦게 이해되었고
이해했을 때는 이미
당신이 없었다.


당신은 늘 늦었고
나는 늘 도착하지 못했다

길은 있었지만
나는 방향을 갖지 못했고
늪에 발을 담근 채
당신의 말이 있던 곳을 향해

움직이는 흉내만 냈다.


그만두자고 말하려 할 때
다른 이름이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이름에 머물고 싶었다.

그래야
섞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국 바깥을 택했고
혼자가 되었고
당신은 없었다.


멀리
내가 없는 곳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만이
밤을 길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당신은
가장 허무한 것이 되었고

나는
그 허무를 더 이상 부르지 않기로 했다


수많은 밤
영혼에 뿔이 자라는 것을 보았고
그 뿔에 찔려
피를 흘렸지만

그 사실을
당신은 모른다.


나는 값을 치렀고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치렀다.


당신의 말은
아름다웠지만
그 안의 어둠은 끝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등이 켜지는 시기가 오면

당신이 떠오르지만
그것은 기억일 뿐이다.


나는 활을 만들고
당신을 향해 겨누지만
쏘지 않는다.


당신의 심장은
이미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계절이 몇 번을 돌아도
나는 떠난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나를 향해 시간을 쓴다.


곧게 간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안다.


밤마다 별을 만들지만
그 별은 녹슬고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생각은
당신이 있는 행성까지

나를 데려가려 하지만
나는 연료가 없다.


가끔
신호처럼 당신이 떠오르지만
그때마다 지워버린다.


당신은
이미 다른 존재가 되었고

나는
눈꺼풀이 없는 사람처럼
오래 살아왔다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시간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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