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色과 상대성이론

by 김헌준 Hearn Kim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틀렸다. 그래서 이 이론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 원리에서 어긋나 있어서 진리로서 성립이 불가한 것을 마치 대단한 발상의 전환 인 것처럼 과대포장 되었다는 말이다. 단지 시간이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리 인식 된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간개념과 시간개념을 합쳐서 시공간이라는 물질적 개념에 대한 이해를 강요하면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한다.


시간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심리적 시간과 물질적 시간이다. 물질적 시간이란 아인슈타인에 의해 설명되듯 우리의 물리적 필요에 따라 적용이 달라지는 시간개념이다. 즉 속도가 대표적인 물질적 시간이다. 그러나 이 물질적 시간은 극히 국소적이며 그 쓰임이 한정적임에 비하여 원래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 진화의 산물 인 심리적 차원의 개념이다. 신체를 기준으로 외부지향적 인 활동이 시간개념의 탄생이며 이는 인간이라는 의식 속에 있는 한 그림자 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심리기능의 하나로 작용한다. 고대시대의 사냥활동이던 근대사회의 상업활공 내지 사회 관계적 활동이던 삶과 존재의 기초는 외부지향적이며 그래서 시간은 안에서 밖으로 흐른다는 의식을 가지고 동시에 심리적 욕구의 방향에 따른 방향성을 가진다. 순간적인 반응이나 미래의 활동을 계획하는 일들은 진화과정에서 이미 지나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 되어야 하므로 그와같은 기억의 양적개념이 시간성을 부여한다. 인간의 뇌 속에서 구성된 공간과 시간의 조합이 삶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간 역시 심리적 공간과 물질적 공간이 있다. 현대물리학이나 과학은 그 관찰대상과 파악의 실체를 물질로서 대한다. 이런 근본적 입장의 오류 때문에 실체를 결코 정확히 파악 할 수 없다. 물론 현대의 양자역학적 발견이 사물의 기초가 되는 원리에 접근하며 더더욱 미세 소립자의 구성원리까지 파고 들고는 있으나 그래서 뭐 어쩌라구? 라고 물을 수 밖에 없다. 외부자극이 뉴런이라는 뇌세포 차원의 시냅스적 소통에 의해 전압 차로 인한 행동촉발 기능은 알겠는데 그 전압 차이를 통해서 좋다 혹은 싫다 라는 두갈래의 반응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파악이 가능한가?


이 지점에서 무엇이 오류 인지를 파악 해야만 이러한 과학의 한계상황을 돌파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가능성을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발견했다.


붓다는 인간 경험의 실상을 파악 할 때 名과 色으로 본다고 했다. 名은 정신적인 측면을 色은 물질적인 측면을 대표한다. 붓다의 지적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는 대표적인 오류가 하나의 극단을 추구 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개체는 그 성향에 따른 한가지 방향, 즉 경향성을 가지며 그것이 굳어져 그의 개념과 범주화가 형성되어, 그것이 그의 존재성을 결정 한다고 본다. 이러한 실상이 모여 세계상을 만들고 그래서 이 세계가 혼란과 반목, 갈등과 투쟁 등의 고통을 경험 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고 통찰한다. 붓다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은 대상의 名的 측면과 色的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인데 인간의 진화적 경향성은 名과 色을 분리하여 그 어느 한쪽이 맞는 것으로 치우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인식구조는 항상 이원성을 가진다는 것. 옳다 그르다. 있다 없다. 밝다 어둡다. 크다 작다. 좋다 싫다. 붓다의 가르침은 모든 것은 SET로 봐야 한다는 것. SET의 의미는 분리해서는 안되는 것. 즉 분리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기초에는 분리, 분석, 분별 등이 유력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名的 측면과 色的 측면을 통합하여 바라 볼 수 있는 안목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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