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알리라구나(Alilaguna) 수상 버스를 타다.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에서 베네치아 시내 본섬으로 가는 대중 교통은 공항버스, 택시, 수상 버스 등이 있다.
어느 것을 이용할지는 자신이 갈 목적지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우리 숙소는 칸나레조(Cannareggio) 지구의 칼레 라르가 거리에 있어서 수상 버스를 타고 오르토(Orto)에 내리는 것이 편리하다. 수상 버스는 운하가 많은 베네치아의 교통 수단으로 빠르고 가깝게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때문에 공항에는 수상 버스를 타는 이정표가 아주 잘되어 있다. 굳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그 이정표만 따라가면 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해 준다.
공항 출구를 나와서 바닥에 있는 배 모양의 방향 표시를 따라가면 엘레베이터가 보인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0이라는 숫자가 있는데 우리의 1층이 여기서는 0층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을 올라가 1층에서 내렸다. 그러면 또 다시 배 모양의 방향 표시가 있다. 표시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아주 긴 무빙워크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대략 15분이나 걸릴 정도로 길다. 무빙워크 끝에서 계단으로 내려가 왼쪽으로 가면 알리라구나를 타는 선착장이 나온다.
무빙워크는 정말 길다.
길지만 지루하지 않는 것은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바깥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빙워크 끝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 계단은 에스컬레이터로 운행하고 있었다. 큰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에게는 무빙워크나 에스컬레이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여행자를 위한 '안성맞춤'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마르코 폴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수상 버스를 알리라구나(Alilaguna)라 부른다.
베네치아 본섬에는 차가 없다. 아니 다닐 수 있는 도로와 교량의 기반 시설이 없다. 그 이유는 베네치아가 바다의 개펄 위에 말뚝을 박고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스, 자동차, 기차는 육지에서 베네치아로 들어가는 자유의 다리(Ponte della Libertà) 건너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까지만 갈 수 있다. 차량이 없는 본섬의 대중교통 수단은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가 대신한다.
그런데 왜 공항에서 본섬으로 가는 수상 버스만을 알리라구나라 할까?
베네치아의 수상 버스는 액트비(Actv)에서 운행하는 바포레토다. 바포레토는 1881년부터 대운하를 운행했으며 관리하는 기업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액트비는 1978년 베네치아 교통 건소시엄 회사로 설립된 공기업이다. 알리라구나도 액트비와 마찬가지로 수상 버스를 운영하는 기업체지만 민영이 경영한다. 1999년 4척의 보트로 공항과 석호를 연결하는 회사로 운행을 시작했으니 규모도 작았다. 처음에는 공항과 본섬만 운행했으나 조금씩 그 규모를 넓혀가고 있다. 알리라구나를 바포레토라 하지 않는 것은 배의 규격이 다르다. 수상 버스라고 하기에는 작다. 차량으로 보면 버스가 아니라 승합차다.
수상 버스 매표소는 배를 타는 선착장 바로 앞에 있다. 오르토(Orto)행 티켓을 구입하고 선착장으로 갔다. 알리라구나는 가는 행선지에 따라 블루 라인(Blue Line), 오렌지 라인(Orange Line), 레드 라인(Red Line)이 있으며 오르토 행은 오렌지 라인에서 타야 한다. 오렌지 라인은 배의 색깔이 오렌지색이다. 만약에 다른 색의 배를 타면 가는 행선지가 다르므로 조심해야 한다.
배는 작았고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배에 올라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뿌연 유리창에 물방울이 흘러내려서 제대로 찍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문을 열 수도 없었다. 배가 바다를 달릴 때 바닷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유리 선창을 때리고 있었다. 배의 구조 자체가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좌석에 앉은 붙박이가 되어 조용히 바다를 쳐다보며 가는 것이 전부였다.
배는 바다를 쾌속정처럼 달렸다. 그래서 보트라고 부르는 것일까? 선창을 두드리는 바닷물에 비해 배의 요동은 적었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나 보다. 바다를 보고 살았지만 뱃사람이 아니기에 바다의 풍랑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르토(Orto)에 도착했다.
숙소를 찾아가려고 구글맵을 켰으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자리를 서너 번 돌아도 여전히 같은 자리다. 에어비엔비를 예약해서 건물의 주소는 있어도 상호는 없다. 주소를 잘못 입력했나 싶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같은 자리를 한참 헤매고 있는데 노신사 한 분이 나타나서 우리를 불렀다. 우리가 묵을 숙소의 주인인 안드레아의 아버지 파울로였다. 공항에서 수상 버스를 타고 출발할 때 연락을 했는데 마중을 나온 것이다. 파울로 씨는 하얀 머리에 듬직한 몸무게를 한 할아버지였다. 내 나이보다 많은 것 같기도 했고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파울로 씨를 만난 곳은 마돈나 델로르토 교회(Chiesa della Madonna dell'Orto) 근처였다.
교회는 늦은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공항에서 위탁 수하물을 찾는 헤프닝만 없었더라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텐데 그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오르토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파울로 씨는 교회를 가리키며 내일이라도 시간이 되면 구경하라고 했다. 교회 안에는 틴토레토의 그림 여러 점과 그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숙소에서 가까우니 꼭 들려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들은 가까이 있는 그 교회를 가지 못했다.
앞장서서 걷던 파울로 씨를 따라 아내와 내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소운하의 낮은 다리를 건널 때마다 파울로 씨는 피아노(Piano)를 외쳤다. 당시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궁금하기도 했으나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나로서는 의미를 물어볼 여유조차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알고보니 '천천히(slowly)'라는 뜻이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사용하는 피아노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의미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