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무기력을 이겨내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

'자책'하지 않기

by onni

생각의 차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사람들은 보통 신체적 질병과 증상에 대해서는 치료와 예방을 당연히 여기고, 고통 속에 있는 이를 쉽게 나무라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병에 대해서는 치료와 예방을 유난스럽게 여기고, 고통 속에 있는 이를 쉽게 나무라기도 한다.


‘너가 마음이 약해서 그래.’

‘생각을 바꿔봐. 세상은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이런 말들을 쉽게 내뱉고는 한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다른 이의 마음의 병에 대해 함부로 말은 못 하지만 안타깝고 속상하기는 하지만, 왜 그럴까? 왜 그 고통 속에서 나오지 못할까?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을 것이다.


암에 걸린 사람에게 ‘왜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니?’라고 말할 수 없으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왜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니?’라는 말은 혹은 그런 생각은 보다 쉽게 하고 있진 않은지.


그런데

내가 그 상황에 처해보니 마음의 병도 질병이고 증상이었다.

예방하고 치료해야 하는 아픈 병이고 아픈 증상이었다.



생각의 차이 맞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도 맞다.


그런데 그 생각의 차이, 마음먹기가 그냥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을 만드는 나의 말, 마음을 만드는 나의 행동들이 모이고 쌓여 나를 좀먹기도, 나를 살리기도 하는 거였다.

하루에도 우리는 수많은 말과 생각과 행동들을 하며 살아간다.

24시간 내가 나에게 하는 말들이 나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습관처럼 내뱉는 작은 말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왜 하는지 몰랐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며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위로와 격려, 인정과 칭찬을 타인에게서만 받으려고 했다.

다른 이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고, 다른 이에게 위로를 받길 바랐다.

타인의 칭찬을 받으면 인정이 되면서 내가 나에게 칭찬해 주는 건 인정이 안 됐다.


그게 나의 문제였다.

타인의 공감과 위로는 온전치 않았고,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하면 미완성 상태인 듯 불안했다.

나라는 사람이 떡하니 이 세상에,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데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학교에서 회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라는 사람도 누군가를 공감하고 위로하고 인정하고 칭찬할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인데,

심지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나’인데


나는 나를 알아주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보는 건 나쁘다 하면서, 나는 나를 얕잡아 보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멸시하는 건 나쁘다 하면서, 나는 나를 그렇게 대했다.


타인에게는 작은 일도 ‘잘한다, 멋지다’ 후하게 칭찬해 주면서

나에게는 작은 일을 해낸 건 ‘당연한 것’ 또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타인의 실수는 ‘그럴 수도 있지’ 너그럽게 이해해 주면서

나의 실수는 작은 실수도 커다랗게 확대해서 나무라고 혼내고 면박을 주고 꾸짖었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강퍅하게 구는 게 필요할 때도 있다.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하는데 침대에 뒹굴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면 한 마디 해야지. 일어나서 얼른 마무리하라고.


그러나 그런 자책이 디폴트가 되어버리는 순간, 하루에도 수백 번 나는 나를 질책하고 나무란다.

그것이 하루, 이틀, 삼일,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나는 마음에 병이 들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 혼나고 질책당하고 무시당하면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따뜻한 위로 한마디 없이 매일 나의 성과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그런 하루하루를 너무나 오랜 시간 행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의 바닥을 보면서, 육아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이 트리거가 되어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맨 처음, ‘자책’부터 끊어내기로 했다.


나를 할퀴고 아프게 하는 ‘자책’이 머릿속에 올라오는 순간, 끊어내고 멈추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끊어내는 게 어려우면 ‘내가 지금 자책을 하고 있구나’ 알아차리는 것이라도 했다.

내 생각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자책’을 멈추는 큰 시작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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