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예민한 기질의 첫째 아이는 극심한 불안감을 보였다.
사실 자기 손 냄새를 맡는 틱 행동은 이 시기에 처음 나타났다. 세어보니 1분 동안 24번이나 손 냄새를 맡았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폐위된 왕'이 된다.
혹자는 첫째에게 동생의 존재는, 남편이 첩을 데리고 집에 들어온 상황보다 더 스트레스라고 한다.
첫째가 동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동생을 돌보는 엄마의 모습에 적응할 수 있게
많은 노력을 했다.
다행히 인터넷엔 수많은 팁들이 있었다.
둘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아빠와 밤잠을 잤다.
나는 첫째 아이와 잤다.
주말이면 나는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갔고,
아직 어린 둘째 아이는 아빠가 집에서 돌보았다.
둘째 아이는 모유수유도 하질 못 했다.
내 젖량이 적기도 했지만, 첫째를 위해서였다.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나 홀로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었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하원한 이후부터 남편이 올 때까지 우리 셋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선, 첫째는 엄마가 동생을 안는 것부터 거부했다.
여느 형제자매 집이 그렇듯이, 자기 물건을 만지는 동생을 응징했다. 큰 소리로 우는 동생을 때렸다. 물론 이유 없이 때리기도 했다.
나는 결국 첫째 아이를 혼낼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아이에게 소리쳤다.
온갖 나쁜 말을 내뱉었고 협박도 했다.
아이를 방에 세게 밀쳐 넣고 나오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그리곤 미친 듯이 후회했고 죄책감에 휩싸였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도 아이도 지쳐갔다.
나 힘든 건 괜찮다.
첫째 아이가 걱정이었다.
동생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싶었다. 정서적으로 이미 아이는 많이 불안했다.
그래서 정신과에 갔다.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로부터.
세로토닌을 처방받았던 것 같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아이의 짜증이 나에게 큰 자극이 되지 않았다.
난 무던해졌다.
부작용은 좋은 자극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크게 기쁘지도, 크게 화나지도 않는 평온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행복하지 않아도 좋았다.
아이에게 화만 안 낼 수 있다면.
이것도 사회의 가스라이팅인 건가?
화내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자고로, TV와 인스타에서 육아전문가들이 말하는 훈육은 감정 없이 단호한 눈빛과 어조로 아이에게 말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간단한 것이다. 아이에게 화는 절대로 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6개월을 먹었다.
남편과 친구들이 말했다.
정신과 약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나를 걱정해 주면서 한 말인데 역시나 난 곱게 들리지 않았다.
약 먹지 않고 화내지 않는 방법이 대체 뭘까?
어떻게 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
대안이라도 제시해 주지 말이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는 건 너의 의지 문제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 인성을 문제 삼는 것으로 들렸다.
그 어디에도 엄마의 감정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엄마의 감정 따위는 인내하고 억눌러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난 버티기만 했고 내 안의 소용돌이는 암으로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