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났다.
탯줄을 잘랐다.
아빠가 되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낸 아내에 비하면 난 사실 쉽게 아빠가 됐다.
아내의 임신 기간 동안은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 핏덩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제야 내가 아빠이자, 이 가정의 '가장'이 된 걸 느낀다.
사실 아내와의 신혼 기간은 연애의 연장선 같았다.
결혼 전에 아내의 자취방도 자주 들락 거렸던 터라 결혼은 우리 둘에게 공식적인 집이 생겼을 뿐이었다. 하드웨어만 바뀌고 소프트웨어는 그대로랄까?
아 물론 참가해야 할 양가 가족 행사가 많아졌다.
이 여자의 '남편' 혹은 '배우자'라는 호칭으로 불리긴 하지만 내가 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윗 세대 어른들의 무게감이랄까? 그런 건 딱히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니 비로소 그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에겐 책임져야 할 사람이 둘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셋이다.
회사는 더 이상 나의 자아실현의 곳이 아니다.
밥벌이 수단이었고 우리 가족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고 난 돈을 벌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 나는 회사에서 힘들기로 손꼽히는 부서에 발령받았다.
난 발령을 거절할 수 없는 일개 대리였다.
한편으론, 힘든 만큼 인정받는 자리였기에 욕심이 났다.
결국 우리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초창기였으나 일이 너무 많았다. 52시간에 카운트되지 않게 컴퓨터 선을 뽑고 야근했다. 진짜 일도 많았지만, 공기업이라서 월급이 적으니 야근수당이라도 챙겨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녹초가 된 채로 집에 돌아오면 긴장감이 풀렸는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물론 아내가 시키는 일은 했다. 아니, 시키는 일만 했다.
아내는 화를 냈다. 나를 원망했다.
거의 증오하는 것 같았다.
아내의 안중에 나는 없었다.
아내에게 나는 그저 빨리 퇴근하고 집에 와서 육아를 거들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게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물어봐주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친구와의 약속도 안 잡고, 취미생활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오로지 회사와 집만 오가는 삶이다.
회사 생활이 힘드니 아내가 부럽기도 했다.
'아이 낮잠 잘 때 같이 잘 수 있는 거 아닌가?'
아이가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땐 '어린이집 갈 동안 아내는 쉬는 거 아닌가?'생각했다.
나는 나대로 힘들었다.
그래서 아내의 힘듦을 못 본 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