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복학을 한다고 통보했다.
'갑자기 웬 대학원?'
대학원 나와서 뭐 할 건지 궁금했다.
복학을 할 바엔, 차라리 복직을 해서 돈이나 벌지...
공기업 외벌이로 서울에서 4인 가족을 부양하며 사는 삶은 너무 고됐다.
아내의 학비도 걱정이었지만, 사실은 남들처럼 맞벌이하면서 돈을 모으지는 못하고 내 월급으로 한달살이 하는 삶이 싫었던 것 같다.
아내가 학교 저녁수업에 갈 수 있도록 나는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다.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다.
아내가 온종일 수업을 듣는 날인 목요일에는, 매번 2시간 일찍 조퇴를 해서 3시에 퇴근했다. 아이들을 하원하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아내가 했듯이.
그리고 아내는 아이들이 잠들고 돌아왔다.
회사 눈치가 보였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서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5시에 나 혼자 벌떡 일어나서 나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식을 잡는 날이면 팀장님은 가장 먼저 내게 물어보곤 한다.
"김 과장. 그래서 와이프 대학원 안 가는 날이 언제랬지?"
아내가 대학원 가는 날을 피해서 우리 팀 회식이 잡혔다.
3시에 퇴근해야 하는 목요일에는 아무런 회의도, 일정도 잡을 수 없었다.
팀장님과 팀원들은 그러라고 했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급한 일을 끝마치지 못하고 퇴근하는 내 뒷모습을 보며 짓는 팀장님의 한숨 소리가 난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밤 10시 반. 아내가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 재우고 소파에 누워서 쉬고 있는 나를 보고 이내 화를 낸다.
"내가 이 시간에 집에 와서 설거지를 꼭 해야겠어?"
어질러진 거실, 아직 하지 못 한 설거지.
아내의 눈에는 그런 것들만 보였다.
아내는 대학원 다니고 박사 졸업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난 마냥 웃으며 응원해 줄 수 없었다.
나도 힘들지만, 아이들도 엄마의 부재를 힘들어한다.
이 힘듦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저 아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도 받아쳤다.
"박사 졸업하고 교수가 될 수 있는 건 맞아?
몇 년 뒤에 교수가 될 수 있는 건데?
교수되면 수입이 얼마인데?
미래를 명확히 그려보고 가든지.
꿈만 좇는 삶은 나도 못 살고 있어."
아내와 한 바탕 싸웠다.
나도 옹졸한 인간인지라, 힘들 때면 그 옹졸한 속내가 추잡한 단어들로 나온다.
그렇지만, 정말 아내의 길을 말릴 생각은 없다.
그냥 힘들어서 나도 내뱉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