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린 아내가 암에 걸린 이유가 궁금했다.
원인을 알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종양이 1cm 자라는 데에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아내의 종양 크기를 역산하면 2년 반 전부터 암이 생겼을 테고, 그건 바로 아내가 우울증 약을 먹었던 때이다.
그토록 아내가 힘들어하던 2023년이었다.
대학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권유했다.
40대 이전에 환경적인 요인으로 암이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고, 유전적인 요인으로 암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유전자 검사 결과,
아내는 유전적으로 돌연변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절망적이었다.
오로지 후천적인 환경적 요인으로 생긴 것이다.
도대체 아내는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
왜 나는 몰랐던 걸까?
"왜 나한테 힘들다고 말 안 했어?"
아내는 분개했다.
"내가 힘들다고 했잖아. 미칠 것 같다고 했잖아."
나는 대답했다.
"그럴 때 내가 뭐라 말했는데?"
아내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모님 쓰라며. 힘들면 애들 데리고 친정 다녀오거나, 장모님 부르라며."
그 당시 나는,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아내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모님 쓰는 건 경제적인 이유로 어렵고,
애들 데리고 짐 싸들고 친정 가는 건 더 힘들고,
일하시는 장모님을 부르는 것은 또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의 나는,
내 해결책이 먹히지 않아도 난 나름 방법을 제시했으니 그걸로 미안함을 덜었다.
아내가 아픈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육아를 도와주시지 않은 양가 부모님을 원망했다가,
날 굴렸던 회사를 원망도 했다가,
예민한 성격의 아내 탓도 했다가,
엄마를 힘들게 한 아이들 탓도 해보았다.
근데 결국 나였다.
내가 아내를 아프게 만들었다.
과거의 기억이 스친다.
하루는 회사 일이 너무 고된 적이 있었다.
집에 와서 쉬겠다고 하고 방문을 걸어 잠근 적이 있다.
아내도 아이들도 들어오지 못하게.
아내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멈추었다.
뭘 말하고 싶었을까?
내가 막은 아내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같은 공간에서 아내는 그렇게 외로이 병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