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엄마의 예민한 아이 키우기 1

by 한냥이

엄마들마다 예민한 영역이 있다.


아이를 육아하다 보면 드러나게 되어있다.


어떤 엄마는 청결에 예민하고,

어떤 엄마는 음식에 예민하고,

어떤 엄마는 시간에 예민하다.


청결에 예민한 엄마는 아이들이 음식 먹다가 옷이나 식탁 주변에 흘리는 꼴을 보기 어렵다.

음식에 예민한 엄마는 어린아이에게 사탕이나 음료, 과자를 주지 않는다. 매 끼니 영양 균형이 잡힌 식사를 차려준다.

시간에 예민한 엄마는 아이가 낮잠 잘 때를 넘기거나 아이 루틴이 깨지면 짜증이 난다.


사실 '예민'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엄마들이 유독 중요시하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민감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계획적이고 통제적인 ESTJ 엄마인 나는 세 번째 유형, 시간과 아이의 루틴에 예민한 편이었다.


엄마들, 즉 어른들의 예민함은 선천적일 수도 있고 후천적일 수도 있다.




그럼 아이의 예민함이란 무엇일까?


영유아 시절의 아이들의 sensitiveness는 대게 선천적인 기질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생존 본능과도 연관된다.

물론 자라면서 부모나 교사와 같은 어른들, 친구들을 사회적으로 모방하면서 생긴 모습이 후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만 6세까지의 영유아기에 아이들의 기질적 특성은 환경적 요인보다 지배적이다.


Thomas & Chess는 9가지 차원을 사용하여 아이의 3가지 기질 유형(순한 아이, 느린 아이, 까다로운 아이)을 구분하였다.

9가지 차원은 활동 수준, 접근성, 적응성, 과민성, 정서적 강도, 기분, 주의력, 유연성, 자기 조절이다.


내 아이는 이 중에서도 '감각적 과민성'이 높은 아이였다. 그래서 까다로운 아이였다.


우선 아이의 모든 감각이 민감했다.


내가 제일 먼저 알아차렸던 건 촉각이었다.

아이는 살짝 까슬까슬한 옷, 몸에 딱 붙는 옷, 고무줄이 조이는 옷을 입질 못 했다.


미각도 예민했다.

하루는 잡곡의 종류를 바꿔서 밥을 지었던 적이 있다.

백미에서 잡곡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잡곡에서 잡곡으로 종류만 달리해서 바꾼 것이다.

아이는 바뀐 잡곡을 알아차렸다. 손으로 한 알을 집어내며 "엄마, 이 잡곡 쫀득쫀득해서 맛있어."라고 말했다.


후각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심리 상담사도 파악했듯이, 아이는 후각 추구 행동을 했다. 자기 카디건이나 손 냄새를 맡으며 낯선 환경에서 진정했고, 새로운 물건을 만지기 전에는 냄새를 맡아 그 물건을 탐색했다.

하루는 아이의 유치원 친구에게 수영복을 빌려온 적이 있다. 내 아이는 "어? 엄마 이거 아인이네 집 냄새인데?"라고 말했다. 내 아이는 유치원 친구들의 집 냄새를 모두 알고 있었다.


청각도였다.

영아 시절에 잠귀가 밝아서 조그마한 소리에도 쉽게 깼다.

조금 커서 5살 무렵의 일이었다. 심리 상담 중에 상담사가 아이에게 존댓말을 써줄 것을 요청했다. 아이는 "선생님, 전 '해써요.' 같은 존댓말이 '씨'랑 비슷하게 들려서 욕 같아서 말하기 싫어요."라고 대답했다. 된소리에 대한 거부였다.


내 아이가 HSP(매우 예민한 사람, Highly Sensitive Person)인가 싶었다. HPS는 외부 자극이나 감정에 대해 평균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성격적 기질이다.




예전에 한 육아 서적에서 본 그림이 있다.

예민한 엄마와 순한 엄마, 예민한 아이와 순한 아이의 4가지 조합에 따라 어떤 육아가 이뤄지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선 '순한 엄마 x 예민한 아이' 조합 유형을 제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생존 욕구와도 관련될 수 있는 아이의 예민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모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예민한 엄마 x 예민한 아이' 유형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을 거듭할수록, 나는 아이의 예민한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예민한 영역과 아이가 예민한 영역은 달랐다.


'감각적 과민성'의 영역에서 사실 우리는 '둔한 엄마 x 예민한 아이' 유형이었다.

나는 계획된 일정이 틀어지는 것에 예민할 뿐, 감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다.

난 샤워 후 물기가 있는 상태로 옷을 입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음식이 짜고 싱거운 지를 잘 느끼지 못한다.

입은 옷이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딱히 없다.

생리 전 증후군을 느껴본 적도 없다.


감각엔 무던하나 루틴에 예민한 엄마와

감각은 예민하나 루틴이라곤 아직 없는 아이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나는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이가 감각적 긴장감을 낮출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이를 항상 독촉했고, 오히려 긴장감을 높였다.


아침마다 입힌 옷이 불편하다고 여러 벌 갈아입고 있는 아이에게 "빨리 아무 거나 입고 가자. 늦었어!"라고 소리쳤다. 매일 옷 때문에 등원 전쟁을 치렀다.


아이의 감각적 불편함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이기에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루틴 있는 삶에 대한 강박만 있는 나는 아이의 심리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아이의 짜증과 화는 점점 더 커져갔다.


아이가 아닌, 나를 변화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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