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즈 끄는 나의 아버지

by 한냥이

보험회사에서 암 진단금을 받았다.

목돈이 생겼다.

처음 생긴 목돈이었다.


그 순간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우리 아빠 차 바꿔주고 싶다.'


물론 그럴 순 없었다.

차를 살만큼 큰 돈도 아니었고

우리 가족의 삶도 여유롭지 않았다.

6년째 남편 외벌이로 서울에서 4인 가족이 생활하기란 녹록지 않았다.

가정이 생긴 나는 이제 부모에게 효도하기 어려웠다.


나의 아버지는 마티즈를 끈다.

그마저도 15년 전에 중고로 산 마티즈이다.

아빠는 차 욕심이 있었다.

항상 멋진 차를 끌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그 꿈을 끝내 이루질 못 했다.


아빠는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셨다.

지금도 지나가는 차를 유심히 살펴보신다.

오늘은 캠핑카가 멋져보이셨나보다.

"와 저 캠핑카 멋지다. 더 늦기 전에 캠핑카 타고 전국 각지를 여행 다녀야 하는데."


나는 말한다.

"아빠 이제 조금 더 있으면 70이야. 운전면허증 반납해야 해."

사드릴 수 없는 상황을 저렇게 합리화해 본다.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할 줄 알았다.

돈을 많이 벌 줄 알았다.

그러나 나 역시 먹고살기 바빴다.

부모님의 삶에 도움을 드릴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짐이었을까?

목돈이 생기니, 한평생 새 차를 끌어본 적에 없는 아빠 생각이 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처갓집에서 도움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남편이 혹시나 불쾌해하지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

남편은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내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너 몫으로 나온 돈이니까.

남편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

파스 냄새가 진동한다.


아빠는 직도 일을 하신다.

평상시엔 오토바이를 타고, 비 오는 날엔 그 마티즈를 끌고 배달 알바를 가신다.

하루에 20건. 건당 이삼천 원을 받는다.

배달통에 음식을 싣고 달린다.

도로의 작은 요철에도 몸이 덜컹 인다.

아빠의 허리가 소리를 지른다.


10년 전에도 배달을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어깨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져서 큰 수술을 받으셨다.

가평으로 동아리 MT를 갔던 나는 늦은 밤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그 사고를 겪고도 그 위험한 일을 아직도 하신다.

100세 시대에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별다른 경력이 없는 60대가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친정에서 쉬고 있는데 아빠가 또 배달을 나가신다.

머리가 하얗게 센 아빠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안쓰러웠다. 그리고 죄송했다.

아빠의 삶이 안쓰러웠고, 자식의 무능력함이 죄송했다.

울음을 차올라 인사를 하지 못했다.


얼마 전 는 심리검사 중에 문장완성검사를 했다.

'내 생각에 가끔 아버지는'이라는 앞문장에 '자식들에게 미안했던 것 같다.'라고 뒷문장을 완성했다.


사실 아빠가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하신 적은 없다.

어린 나는 아빠를 원망했다.

이 가난의 모든 책임을 아빠에게 돌리는 것은 쉬웠다.


30대가 된 나는, 부모가 된 나는 이제야 안다.

사람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 가정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빠는 능력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치만 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딸린 자식이 셋이었다. 돈 벌이는 쉽지 않았고 그마저 번 돈도 생활비로 쓰기에 빠듯했다.


아마도 아빠는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기 싫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내 자식에게 그러듯이.

그래서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오셨다.

열심히 살아온 아빠의 인생은 그 자체로 자식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은 나의 늙은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비가 오는 날엔 그 낡은 마티즈를 끌고서 아직도 그 위험한 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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