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더 살아도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by 한냥이

대학원 복학 후 1년의 기간 동안 이수학점을 모두 채웠다. 논문제출자격시험(일명 '논자시')도 통과했다. 연구실적 100%도 채웠다.

논문만 쓰면 이제 모든 졸업요건을 갖추게 된다.

진짜 '박사'가 되는 것이다.


이제 학업은 끝나가니, 내가 해야 할 일은 '복직'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논문 써서 졸업하겠다는 큰 포부를 갖고 있었다.


엄마의 부재에 적응해 가는 아이들을 보며 안도했고, 나는 복직을 신청했다.

이제 벌이도 나아질 테니, 나의 부재를 채워줄 오후 시터 이모님도 고용했다.

모든 것이 탄탄대로였다.


복직을 앞두고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건강검진을 예년처럼 받았다.

유방외과를 가보라는 소견이 나왔고, 별 대수롭지 않게 집 근처 병원을 방문해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온 날은 복직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 날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안타깝지만 악성 종양이네요."

의사가 말했다.


나는 당황했고 횡설수설했다.

"네? 암인 거예요? 저 당연히 아닐 줄 알고 아무것도 안 찾아봤어요. 이제 전 어떻게 되는데요? 뭐 해야 하는데요?"


"다행히 크기가 작아요. 초기에 발견한 거예요. 저희 병원이랑 연계된 대학병원 예약해 줄 테니까 날짜 잡고 가요. 밖에서 기다리세요."

의사는 말을 아꼈고, 나는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악성 종양이라니. 내 나이 33살이었다.

너무 놀랐었는지, 아님 예상치 못했어서인지 떨떠름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든 생각은 우습게도 '당장 내일 복직인데 어떡하지?'였다.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논문 게재를 해서) 내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가서 다행이다.'였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인생을 빨리 사냐고.

취직도, 결혼도, 아이도 빨리 낳았는데

암까지 빨리 걸려버렸다.


가족이나 친인척 중에도 암 전례가 없고,

아직 이른 나이라서 주변에 암 걸린 사례도 없다.


이런 내 삶을 돌이켜보니 파란만장한 것 같기도 하고.

비운의 주인공이 된 거 같기도 하고.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살아가야 했고, 나는 암 진단을 받고 바로 아이들을 하원하러 갔다.


하필 남편이 해외로 출장을 가서, 평소처럼 아이들을 돌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냥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 이상 잡생각이 많아지지 않게.


그리고 그다음 날, 무려 내가 5년 반 만에 복직을 하던 날이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신혼 때처럼 대중교통을 타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다시 돌아간 회사에서 동료들은 크게 환영해 줬다.

모든 팀을 돌며 인사를 했고, 업무 분장도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멘털이 나간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오늘은 내 비밀을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치료 계획이 잡히지 않은 터라 갑작스레 다시 휴직할 수도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회사 생활을 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2주가 흘러 대학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다.


설 연휴를 앞둔 추운 겨울이었다.

차갑고 덤덤한 감정만 들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온종일 검사를 했다.

방사능 피폭량이 많아서 그날은 아이들과 떨어져 호텔에 가서 잤다.


그렇게 하루 종일 검사를 했는데도 미처 하지 못한 검사가 남아있었고, 5일 뒤에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다.

한 두 가지의 검사만 받으면 돼서 가벼운 마음이었다.


겨드랑이 초음파 검사를 하던 와중, 의사가 말했다.

"림프절 전이가 의심돼서 세침검사 진행할게요."


"네? 전이요?"


전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사실 그동안 내가 덤덤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암 크기가 작아서 초기일 테고 당장 죽진 않을 거라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암 진단을 받고도 아이들 걱정이 아닌 복직을 먼저 걱정했던 것이다.




'전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무서웠다.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으면 어떡하지?'

'그럼 난 1기가 아니라 2기, 3기인 건가?'

'생존율은 얼마지?'

'몇 년을 더 살 수 있지?'

'10년은 더 살 수 있나?'


'근데 10년을 더 살아도 우리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린데.'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사춘기는 어떡하지?'

'딸아이에게 생리대 차는 법은 누가 알려주지?'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시니 우리 애들 키워주시겠지?'

'친언니 사는 곳으로 이사 가서 또래 조카들이랑 어울려 자라게 하면 그래도 밝게 자라지 않을까?'

'홀아비 될 우리 남편은 불쌍해서 어떡하지?'

'남편이 재혼하는 게 나을까? 근데 새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려나?'


극심한 불안감과 잡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날,

아이들 걱정에 처음으로 진한 눈물을 흘렸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역시 내 커리어보단 내 아이들 걱정이 앞섰다.

나 지금 죽으면 안 되는데...


병원에 가는 길.

나와 남편은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전이는 없었다.

어제까지 비운의 주인공을 자처하던 나는 안도하며 정신을 차렸다. 남편은 오래간만에 웃음을 보였다.

치료는 이제 시작인데, 나와 남편은 치료가 끝난 기분이었다.

살 수만 있다면야. 어떤 치료든 두렵지 않다.


2주 뒤로 수술 날짜가 잡혔다.


회사엔 병휴직을 냈고, 졸업 논문 쓰는 건 멈췄다.

내 삶을 멈추게 할 또 다른 이유가 생길 줄은 몰랐다.


수술 이후 4개월 간 항암 치료를 받았고, 2개월 간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10년간 매일 호르몬약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맑았다.

다시 태어난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웃긴 건, 그토록 갈망하던 커리어가 다시 멈춰졌는데 마음이 편안했다.


암이 나에게 쉴 수 있는 명분을 줬기 때문이다.

모든 걸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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