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치료가 끝나기 일주일 전쯤.
또다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10년간의 호르몬 치료가 남았지만 일주일 뒤면 병원을 드나드는 치료는 끝난다.
환자로서의 내 생활이 끝나게 된다.
내가 쉴 수 있는 명분이 사라졌다.
나는 이제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제 체력상 가정, 학업, 일 모든 걸 다 해내진 못 할 텐데.
이런 생각이 드는 나를 보며, 진짜 '징하다' 싶었다.
치료가 끝나가는데 마음이 불안해지다니.
당장 졸업 논문을 구상해야 할 것만 같았다.
왜 나는 쉬지 못하는 것일까?
쉬고 싶긴 한 걸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것도 서울대 나와서일까?
나는 대체 무엇을 갈망하는 걸까?
인생을 다시 정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쉴 수 있는 명분이 생겨서 쉬는 게 좋았다는 나.
그런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많이 지쳤었나 보다.
사실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나 보다.
'쉬고 싶은데 쉬기 싫은' 감정이 동시에 드는 건
내 정신과 체력은 쉬고 싶은데, 이 '아까운 나'는 쉬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유튜브에서 어느 대학 교수의 강의를 보았다.
'내면소통'이라는 책을 쓴 연세대 김주환 교수의 이야기였다.
한국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고, 달성하는 이 굴레에서 쳇바퀴 돌듯이 반복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실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만족'하는 단계가 있는데 그걸 놓친다는 말이었다.
무언가를 이루면 이제 만족하고 충분히 즐기면서 살아도 될 텐데, 잠시 멈춰도 될 텐데 말이다.
다시 멈춘 삶.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이는 먹었고 체력은 떨어졌다.
자존감도 함께 떨어졌다.
도파민 넘치는 삶을 원했는데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다.
매일 먹는 항호르몬제 때문에
엄청나게 피로했고 힘들었고 짜증 났고 우울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홀로 집에 머물러 있을 때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나는 더 가라앉았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나는 다시 나갈 준비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의 회복은 곧 복귀를 의미했으니까.
어딘가 가는 차 안에서
이런 걱정 많은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축구에서 이런 말이 있어.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다시 일어서면 돼 여보."
그래. 난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무언가를 이뤄야만 해.
그러면서 남편이 덧붙였다.
"여보가 뭘 하든 상관없어. 제발 건강만 해줘."
저 말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내 일이 잘 안 풀려도, 내가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해도, 나에겐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날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멋진 내가 되는 것도 좋지만
멋진 아내,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토록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왔다.
가을학기 대학원 수업 청강 신청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학교에 나가서 공부도 하고
졸업논문도 쓰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하고 있다.
졸업논문 주제를 구상했고 작성 중이다.
후년 겨울에는 졸업하는 것이 목표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달일 것이다.
나의 졸업과 너의 입학.
맞물려있는 나와 너희들의 삶.
또 다른 시작일지 모르는 나의 마침표와
너의 출발을 축하하는 그날이 고대된다.
예전보단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이뤄보겠다. 내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