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짓기 TMI 대방출
<나는 나를 브랜딩합니다>라는 가제로 퍼스널 브랜딩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지인들 반응은 두 가지였다.
"궁금하다. 빨리 읽고 싶다."
"그런데 책 제목에는 '브랜드'나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어려운 퍼스널 브랜딩, 책까지 어려워 보이면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일리 있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책을 쓰는 동안 '브랜드'나 '브랜딩'을 빼놓고는 어떤 제목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걸 빼면 찐빵을 내놓는 것 같았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허여멀건 빵 말이다. 리얼 찐빵은 사람들에게 학습돼 있기라도 하지. 찐빵의 통통한 배를 가르면 까만 앙꼬가 김을 솔솔 풍길 거라는 걸,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대중이 모르는 초보 작가의 첫 책은 그렇지 않다. 배를 갈라 전시해야 무슨 맛인지 상상할 수 있다. 속 재료를 보여주려면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대놓고 말해야 했다. 그럼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먹음직스러운 제목이어야 했다.
세 번의 제목 회의는 그 어려운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속 재료를 살짝 보여준 버전과 보여주지 않은 버전, 두 가지를 준비했다.
1안. <끌리는 것에서 끌리는 나를 발견하다>
2안.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
'브랜드'나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은 버전이 1안. '브랜드'를 넣은 버전이 2안이다.
1안에 '끌리는'이 두 번이나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끌리는 건 2안이었다. '나'라는 단어가 들어가자 대놓고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쓰지 않고도 퍼스널 브랜딩 책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1안은 자기계발서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다른 자기계발서들과 차별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인지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로 결정 탕탕!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쓴 글은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하면서 썼다)인데, 행여나 에세이집으로 오해받으면 어쩌지? '오늘부터'가 꼭 들어가야 할까? '~로 살기로 했다'는 어떨까? 등등의 생각.
2안만 놓고 인스타 스토리에 투표를 붙였다.
"이 제목으로 고!" vs. "다른 제목 더 고민?"
결과는 5:5였다.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에디터 호주박 님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도 발 벗고 제목 아이데이션에 돌입했다.
카피라이터 친구의 도움을 받아 아이데이션하며 세 개를 추렸다.
1안. <일 인분의 브랜드>
2안. <나는 나의 베스트 브랜드> ***
3안. <모두의 퍼스널 브랜딩>
각각의 접근 포인트는 이러했다.
- '퍼스널'을 은유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은?
- 퍼스널 브랜딩을 원하는 독자를 응원하는 제목은?
- 진취적으로 퍼스널 브랜딩을 정의하는 듯한 제목도 생각해볼까?
다른 후보 중에는 <일인칭 브랜드 시점>, <나로 태어나 브랜드로 사는 법>, <브랜드형 인간> 등도 있었다.
이 책의 타깃 독자는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퍼스널 브랜딩이 무엇인지 들어봤고, 어느 정도 고민해본 사람. 따라서 '브랜드'나 '브랜딩'이 어려워서 피하기보다는 어렵더라도 한 발 내디딜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제목이길 바랐다. 따라서 한 발 물러서 남 얘기를 하는 듯한 1안과 3안을 제외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에 가까운 제목은 2안 <나는 나의 베스트 브랜드>(=나나베).
이제 1차 제목 후보에서 나온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오나브)와 경합을 벌일 차례다.
좀 더 그럴듯하게 띠지 카피 가안을 덧붙여 지인 투표를 실시했다.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1안.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
2안. <나는 나의 베스트 브랜드>
투표 결과는 다시 5:5 박빙. 재밌는 건, 유권자의 온도 차가 확연히 갈린다는 것이었다.
1안을 택한 유권자는 외부 요인을 들며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2안은 개인에 집중된 자기계발의 느낌이라면, 1안은 업계 인사이트까지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어요. 그래서 타깃 독자가 더 넓어질 것 같아요. 업계 흐름이나 통찰에 포커싱해서 타이틀을 짓는 게 저자 신뢰도나 콘텐츠 생명력에 도움될 것 같아요. 당차고 능동적인 느낌도 좋고요."
2안을 택한 유권자는 자신이 느끼는 끌림에 주목했다.
"2안이 호기심을 자극해요!"
"2안이요! 위트 쩔쩔."
"처음엔 1안. 볼수록 2안."
"2안! 내가 브랜드라는 거죠! 나로 돈 벌고 싶다~"
무엇을 택하든 '왜 하필 이 제목'이어야 하는지 나 스스로의 판단 기준이 중요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를 택했다.
<나나베>는 언어유희로 위트를 살린 제목이다. 2안 유권자는 '베스트 프렌드'라고 읽었다가 '베스트 브랜드'라는 걸 알고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지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는 내 책 한 권에 머물러주지 않는다. 두 번 봐야 '아하' 하는 제목은 직관성 측면에서 확실히 불리하다.
반면 <오나브>는 쉽게 읽히고 바로 이해되며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유추되는 제목이다. 무슨 맛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배를 갈라 전시한 것이다.
<나나베> 속의 '나'에 대한 해석이 나뉘었다. "나는 나의 베스트 브랜드!"라는 말을 두고 2안 유권자는 '나=독자'인 자신에게 건네는 말로 받아들이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1안 유권자는 '나=저자'의 자기애로 해석했다.
2안을 택하면 특정 독자층을 확실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좁아도 깊게 파고드는 브랜딩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 선택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결국, 모든 사람이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모든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사람은 퍼스널 브랜딩을 원하는 모든 예비 브랜더다.
퍼스널 브랜딩이 절박해서 쓰게 된 책. 내 책을 택하는 이들도 나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면 '위트'보다는 '신뢰'를 주는 게 먼저다.
<나나베>에는 재치 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이 들어갔다. 이는 친구가 준 아이디어 <나는 내 최고의 브랜드>에서 디벨롭한 버전. 처음에는 타인에게 '너는 최고의 브랜드야'라는 응원을 받은 것 같아 뭉클했는데, 언어유희를 섞으면서 감동 전달에 실패했다. 내가 던진 위트가 누군가에게는 장난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일. 1,2,3의 이유로 <나나베>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사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는 내가 본문에 쓴 문장을 호주박 님이 건져 올린 것이다. 내가 쓴 문장인데도 제목에 올린다고 하니 한동안 생경해서 글도 제목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제목 짓기 과정은 내가 <오나브>를 받아들이는 시간,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하면 내가 살아온 삶은 브랜드 스토리가 된다. 나의 이름은 브랜드명이 된다. 나의 SNS는 브랜드 채널, 내가 만든 콘텐츠는 브랜드의 주력 제품이 된다.
브랜드 색안경을 끼고 보면 인생은 B(Brand)와 D(Daily) 사이의 C(Choice)다. 브랜드가 되기를 선택하거나 지금과 같은 일상을 살거나. 결정은 오로지 스스로에게 달렸다.
- <오나브> '브랜드 색안경 끼고 거울 보기' 중에서
여담으로.
출판사에서는 가제였던 <나는 나를 브랜딩합니다>도 물망에 올렸으나 '브랜드'냐 '브랜딩'이냐의 기로에서 '브랜드'를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되기로 했다'와 '~되기로 한다' 중에서는 굳이 어색한 느낌의 '한다'보다는 '했다'로 선택. '~살기로 했다'도 고려하였으나 '산다'는 것이 주는 피로도가 우려되어 패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야' 하는 과정에 놓이는 게, 이 책에서 말하는 '브랜딩'에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오나브> 에디터 호주박 님
*글 제목 "제목의 탄생 - 왜 하필 이 제목이죠?"는 책 제목을 지으면서 읽은 <월간 채널예스>의 코너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