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가 흔드는 감정의 잔향이다
과거 관계에서 들고 온 트리거는
늘 현재의 관계를 먼저 건드린다.
지금의 누군가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과거의 누군가가 남겨놓고 간
감정의 그림자가
현재의 사람 위로 조용히 떨어진다.
과거의 상처가 오래된 먼지처럼 달라붙어
이유도 모른 채
현재의 누군가가
대신 맞고 있는 듯한 순간들.
트리거의 본질은
지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전에 겪은 감정의 흔적이
갑자기 깨어나는 데 있다.
과거에 들었던 말투,
그때의 침묵,
그때의 무시,
그때의 거리감.
현재의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을 모르는데
과거의 감정이 현재의 장면에 겹쳐지며
상대는 뜻밖의 위치에 서버린다.
사람 사이에는 늘 틈이 있다.
트리거는 그 틈 사이로 스며든다.
말 한마디의 톤,
문장의 끝에 남은 여백,
연락이 잠시 늦어진 시간 같은
아주 작은 요소들이
과거의 기억을 거울처럼 비춘다.
감정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잊고 있을 뿐,
감정은 마음의 어딘가에
잔향처럼 조용히 남아 있다.
그리고 어떤 순간
다시 깨어나 현재의 사람에게 향한다.
문제는
트리거가 가리키는 방향이
항상 엉뚱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상대는
그 잘못을 하지 않았고,
그 상처를 주지 않았으며
그 기억에 책임도 없다.
그런데도
과거의 감정이 너무 강해서
현재의 마음을 흔든다.
사람의 온도는
이때 크게 요동친다.
과거의 감정은 차갑고,
현재의 사람은 따뜻한데
그 온도가 부딪히며
관계는 흔들린다.
현재의 사람은 이유를 모르고
과거의 감정은 이유를 잊지 않는다.
트리거를 다루는 일은
과거를 덮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는 일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과거의 상처의 대리인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로 바라보는 일.
관계를 지키는 건
과거를 없애는 게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대신 때리지 못하게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과거의 상처가 향하지 않도록
내 안의 결을 먼저 살피는 일.
결국
관계를 지키는 진짜 힘은
현재의 사람을
과거의 그림자에서 분리할 수 있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