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역

내 인생의 첫 기억

by 이우현

나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가난한 집 둘째 계집아이로 태어나 어릴 땐 집안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고 그때 나이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5살에서 6살 무렵이었다.


그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시골 기차역 앞에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하염없이 부모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난 아직도 그 역 근처를 지나는 걸 힘들어할 만큼 아픈 기억이었고 이게 내 인생의 첫 기억이다.. 이전 기억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꽤 오랜 기간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 물었을 땐 1년 조금 더 살았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친오빠와 함께 친척 집으로 보내졌지만 어려도 알 건 안다고 나에게만 유독 이기적이었던 친오빠와 지독히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하신 할머니 덕분에 퍽이나 눈칫밥도 먹고 혼이 나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나는 고작 많았어야 6살이었을 그 나이에 지독히 외롭다는 걸 배웠고 그때의 기억이 내 인생에서 많은 걸 지배하고 있었다.


내가 자식을 낳고 어렵게 꺼낸 그때의 이야기를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털털하고 고집이 세서 미움받을 짓을 많이 했었어."


'그랬구나..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거였구나..'


나는 선천적으로 신장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작다. 치료가 되는 부분이 아니란 거다. 이 사실을 다 큰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서 작은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우현이가 그때 삼례에 있을 때 그리도 많이 울어서 신장이 녹은 거 아니니?"


"..."


그랬었구나. 그 어린것이 남들 눈에도 신장이 녹아내릴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그리 슬피 울었구나.


가난으로 인해..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사는 줄 알았던 나는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이유를 물었고 대단히 충격적 이게도 시작은 그리했으나 아버진 일을 하지 않으시고 한량처럼 노름만 하며 지내셨다는 엄마의 대답에 역전에서 홀로 하염없이 엄마, 아빠를 기다리던 한 소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기다리지 말라고..

하얀 빵빠레를 사주며 도망치듯 맡기고 가버린 엄마, 아빠를..


그 허탈함과 두려움을.. 기억한다.

나는 그 이후로 두 번 다시는 하얀 빵빠레를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