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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따이공

by 이우현

사전적 의미가 없는 걸 보니 잘못된 기억인 듯싶은데 90년대 초반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선 손야구로 하는 놀이가 유행이었다. 그때 사용했던 공을 우리는 고따이공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점심시간이나 잠깐의 쉬는 시간을 이용해 운동장에 우르르 몰려와 그 놀이를 했었다. 물론 나는 여자라서 남자아이들이 끼워주질 않아 구경만 했지만ㅎ


주먹만 한 고무공이었는데 그게 150 원가량 했었는지 가끔씩 아버지께서 100원씩 용돈을 주신 날이면 친오빠는 꼭 50원씩 뺏어갔었다. 친구의 고따이공을 잃어버렸다는 이유였다.


어린 마음에 늘 내가 받은 100원의 1/2 인 50원을 상납 아닌 상납을 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다양했지만 대부분 그 고따이공을 잃어버렸다는 핑계가 제일 많았는지 아직도 그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었음에도 나는 반절씩 강탈 아닌 강탈을 당할 때도 이유를 품지 못했다.


친오빠는 커서도 그 버릇은 버리지 못했다. 군대에 가서는 선임의 물건을 고장내서 몇 십만 원씩 요구했고 다 큰 어른이 돼서는 버스와 접촉사고가.. 트럭과 접촉사고가 났다는 이런저런 핑계로 늘 내게 돈을 요구하거나 빌려달라곤 했다.


나는 오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오빠는 내게 학교에서 늘 상을 받아오는 나 때문에 어릴 때 자신이 기를 못 피고 살았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나는 그거라도 받아와야 관심을 받을 수 있었고 칭찬은커녕 나중엔 상 좀 그만 타오라고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던 나의 상처를 오빠는 알고 있을까 싶다..


늘 내 인생에서 1/2을 뺏어갔던 오빠는 내 삶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장남이지만 그 무게는 늘 내 몫이었고 19살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집안 빚을 갚아나갔다.


정작 대학 진학을 위해 퇴사했을 때 내게 주어진 돈은 퇴직금이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오빠의 대학 등록금으로 써졌고 난 서울에 있는 꽤 괜찮은 대학을 합격했음에도 그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하지 못하고 한참 후에야 스스로 대학을 진학해야 했다.


그땐 그게 당연한 듯 알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나의 영광 없는 희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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