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죽음
내가 받아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해봅니다.
58세라는, 아직은 삶의 결실을 온전히 누려야 할 지인의 부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시간입니다. 오늘 그이는 화장장으로 갑니다. 비워진 물동이, 남겨진 물자국, 흔들리며 채워온 58년의 무게.
이기철 시인은 말합니다. "물 긷는 사람은 물을 긷는 시간보다 물을 가두어오는 시간이 더 길다"
58세, 인생의 황혼이라기엔 너무 이르고 청춘이라기엔 이미 굳은살이 박인 나이. 고인은 그 세월 동안 가족과 삶이라는 물동이에 물을 채우기 위해 쉼 없이 걸어왔습니다. 시 속의 주인공이 물이 넘칠까 봐 발걸음을 죽이며 걷듯, 고인 또한 삶의 풍파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쏟아내지 않으려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걸었을까요. 58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흐른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길어 올린 생의 수확물들을 지켜내려 애쓴 시간이었습니다.
고인의 부고를 접하고 이틀 동안 많은 생각이 오고 갑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든 모습이 선합니다. 불현듯,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가득 찬 순간에 멈춰버린 발걸음입니다. 시에서 물은 곧 '살아 있음'의 증거이자 가꾸어야 할 마음입니다. 고인은 이제 막 그 물동이를 가득 채우고 잠시 숨을 돌리려던 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식들을 성장시키고, 혹은 일터에서 물러나 '나만의 물'을 들여다보려던 찰나, 죽음이라는 불청객은 그 물동이를 내려놓게 했습니다. "가장 맑은 물은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물"
시인의 말처럼 고인이 생의 막바지에 보여준 인내와 미소는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맑은 수심(水心)이었을 것입니다. 58세에 멈춘 그의 생은 미완성이 아니라, 가장 맑은 물을 가득 채운 채 전해진 하나의 완성된 기도와 같습니다.
남겨진 이들에게 고인 물줄기는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물 긷는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젖은 발자국이나 떨어진 물방울이 남습니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58년간 길어 올렸던 헌신과 사랑은 남겨진 이들의 가슴속에 작은 웅덩이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고인이 차마 다 나르지 못한 물동이를 바라보며 슬퍼하지만, 시인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물을 긷는 행위 자체가 이미 삶의 경건한 예배였다는 것을. 비록 육신은 멈추었으나 그가 길어 올린 생의 온기는 여전히 우리 곁에 축축하게 남아 위로를 건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으로 감사하고 있는가요. 유한한 삶에 얼마만큼 감사하며 살아갈까요?
고인의 58년을 되새겨 봅니다. 그는 실패한 보행자가 아니라, 생의 가장 귀한 액체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고결한 수행자였습니다. 그가 내려놓은 물동이 안에서, 이제는 그가 고통 없는 평온한 수면(水面)이 되어 쉬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감사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