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by 이경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흑백 TV 앞에 쪼그리고 앉았던 이들은 너나없이 코미디언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그만 자지러지고 말았습니다. 귀한 아들이라며 점쟁이에게서 지어놓은 엄청나게 긴 이름 탓에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해야 하는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상황에서도 그 이름 한 글자 한 글자를 모조리 외느라 연신 숨을 헐떡이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스운 정도를 넘어서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하기야 그 이름 속에 든 수명이 무한하다는 뜻의 ‘수한무(壽限無)’,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인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 년을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 등을 비롯한 하나하나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한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만.


물건 하나의 이름을 붙이는 데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인데, 하물며 사람의 이름을 짓는 일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 사람 역시 첫 아이가 태어나던 무렵 제 딴에는 들뜬 마음에 직접 이름을 지어보리라 마음먹고, 이곳저곳 이론서까지 들추어가며 꽤 근사하다 싶은 이름을 지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안타깝게도 소중한 손주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지으면 되겠냐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막아선 부친의 단호한 결정 앞에서 하릴없이 고개만 흔들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작명가의 운명과 닿아 있었던 모양인지, 이십수 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그와 같은 일에 또다시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새로이 태어난 손주의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지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으니 말이지요. 이미 오래전 아들놈 이름과 관련한 쓰라린 추억이 있었던지라 완곡하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부탁을 거두지 않는 지인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그 무모한 일에 다시 뛰어들고 말았지요.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서 서적은 물론이요, 온라인 곳곳에 축적된 작명 기법까지 끌어와 공부하며 심혈을 기울인 끝에 전문적으로 이름을 평가하는 곳에서 호평(好評)까지 얻어 자신 있게 내놓았지요. 덕분에 첫째에 이어 얼마 뒤 태어난 그 동생의 이름까지 지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그 후로도 그런저런 이력을 내세우며 몇몇 선후배의 아호(雅號)를 짓는 어쭙잖은 객기(客氣)도 부려보았으나, 그래도 늘 정곡을 찌르며 몸을 추스르게 하는 한 마디는 함부로 이름 짓는 일에 나서는 건 삼가라는 것이었지요.


‘“손자 이름 저렇게 지으면 큰일나는데”... 혀 차는 할아버지, 귀 닫은 아빠’


바다 건너 한 연구팀이 이름에 관한 국제적 경향을 연구해 발표한 모양입니다. 연구 결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대에 흔한 이름을 따라 짓기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이름’을 추구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기사 표제어처럼 그 할아버지들이 혀를 차며 걱정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만. 뜬금없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겼다는 격언 한마디가 귓전에서 조용히 간지럽힙니다.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로울 게 아닌가?”




관련 기사 : “손자 이름 저렇게 지으면 큰일나는데”... 혀 차는 할아버지, 귀 닫은 아빠 / 매일결제(2026.02.04.)

https://www.mk.co.kr/news/it/1195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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