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납작 복숭아

서른둘과 서른넷, 그리고 네 살

by 제이



나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달고 시고 물이 줄줄 흘러 내 손이 끈적해지는 기분도 싫다. 잘 익은 과일 안에서 벌레를 발견해 버린 트라우마도 있고, 밖에서 과일을 먹게 되면 자꾸만 벌레가 꼬이는 것도 싫다. 과일 껍질을 버리고 제대로 닫아놓지 않으면 하루 만에 초파리가 생기는 것도 기분 나쁘다. 차갑지 않은 애매한 온도의 과일을 먹을 경우에는 더 최악이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식사 후에 꼭 내주시는 과일이 언제나 나에겐 불편한 의무감이 되었고, 따가운 눈초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케이는 과일을 매우 사랑한다. 어떤 과일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우리가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어느 유럽이 그렇듯 납작 복숭아의 계절이었다. 온갖 마트에서 이 잘못 만든 도넛처럼 생긴 납작하고 못생긴 복숭아를 팔았다. 표면에 솜털이 난 것부터 매끈하고 더 붉은 것까지 종류도 많았다. 이곳에서의 첫날, 케이는 가장 먼저 이 복숭아를 샀다.


납작 복숭아는 사실 유럽이 원산지가 아니다. 아주 옛날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넘어왔다고 한다. 그 이후에 유럽에서 여러 품종 개량을 거쳐 현재의 납작 복숭아가 되었고 현재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따뜻한 유럽 나라에서 주로 생산된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한국에 있는 내 친구와 첫 통화를 했을 때 그 친구는 내 안부에 앞서 납작 복숭아 섭취여부를 먼저 물었다. 친구가 한국과 가까운 중국이 아닌 유럽의 납작 복숭아를 이토록 그리워하는 것을 보면, 어찌 보면 이 납작 복숭아는 성공한 이민 1세대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납작 복숭아에게 괜히 부러움이 생겨버렸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나는 물사이에 끼어버린 기름 같았다. 집 앞에만 잠시 나가도, 건조하고 화창한 여름 날씨와 눈부신 초록색이 만연한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만 혼자 섞이지 못하고 둥둥 떠있었다. 생김새가 완연히 다른 내 모습에 먼저 베푸는 친절이 나에겐 마냥 기쁘지 않았다. 얼마큼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내가 이곳에 섞일 수 있을지, 털나고 못생겼지만 사랑받는 납작 복숭아처럼 이곳의 입맛에 나를 개량하고 맞춰야 하는 걸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복숭아의 맛은 나에겐 그냥 그랬다. 한국에서 먹던 백도와 황도 그 어떤 맛도 아닌데 좀 더 들쩍한 기분이 들었다. 케이는 종류별로 다양하게 납작 복숭아를 사보았고, 어디서 산 복숭아가 가장 맛있다고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수영장에 갈 때는 칼로 대충 썰어가서 맨손으로 집어먹기도 하고, 치즈나 루꼴라를 사다가 같이 샐러드로 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두 개 예의 상 집어먹고는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계절이 바뀌어 마트에 가서 납작 복숭아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여름이 오면 또다시 케이는 납작 복숭아를 사러 가겠지. 그때는 내가 납작 복숭아를 덜 부러워하길 희망한다.

작가의 이전글3.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