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사

서른둘과 서른넷, 그리고 네 살

by 제이



서울에서 우리 집은 2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이라서 처음 이사를 들어갈 때 여럿이서 침대나 냉장고와 같은 무거운 가구나 가전을 옮기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보다 짐이 많이 없다 생각해 단행했던 셀프이사에서 요령도 방법도 모르는 우리가 잘 해낼 리가 만무했다. 여럿의 도움을 받아 해내기야 했지만, 몸살이 날 정도로 힘들었기에 다시는 셀프이사를 하지 않을 것이며, 대신 돈을 쓰고 건강을 지키겠다고 케이에게 여러번 말하며 다짐했었다.


내 결심이 무색하게도 우리가 서울에서 사진만 보고 미리 예약한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한국식으로는 5층이었다. 하필 낭만 가득한 층고 높은 집을 골라서 한 층만 해도 계단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손에는 무려 32킬로그램의 캐리어 4개와, 23킬로그램의 캐리어 2개, 각자 등에 맨 백팩킹용 등산가방, 그리고 모래가 잔뜩 들어간 고양이 화장실과 캐리어 속에 웅크려 떨고 있는 고양이가 있었다. 이사업체가 있을 리는 만무했고, 부동산 직원은 나에게 연신 괜찮겠냐고 날카롭게 물었지만 도와줄까라고 묻지는 않았다. 3.5킬로그램의 작은 고양이가 우리를 도와줄 리도 없었다.


마침 이곳은 폭염으로 인해 기온이 35도를 넘어있었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땀이 비올 듯 쏟아지고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반층씩 올려볼까, 한 번에 가는 게 나을까, 내가 위로 가서 들고 갈지 혹은 반대로 가면 좀 더 편할지, 쉼 없이 반복된 오르내림. 새로운 이웃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캐리어 하나를 반층 위로 올려주었다. 좀 더 도와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새로운 이웃들에게 우리는 안전하고 예의 바르며 민폐를 절대 끼치지 않는 아시아인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한참의 캐리어와의 사투 끝에 마침내 마지막 짐을 현관 앞에 가져다 둘 수 있었고, 그제야 이 도시가 우리에게 제대로 환영인사를 하는 듯했다. 겁 없이 온 당신들, 아날로그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당연히 모든 것이 쉬울리는 없다고 한국에서부터 여러 차례 마음을 다잡았었고, 어려운 순간도 즐겨보리라 생각하며 이 새로운 도시에 발을 딛은 지 만 하루 만에 우리는 온몸을 가로지르는 근육통을 웰컴 기프트로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세 달쯤 지난 후, 친한 친구 브이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했다. 알고 보니 이 도시에서는 셀프 이사가 당연한 것이었고, 심지어는 이사하는 날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와서 도와주는가가 이 사람의 평판을 반증하기도 한단다. 식기 세척기도 소파도 아무렇지도 않게 번쩍 들어 5층 아래로 내리는 브이를 보며, 고작 캐리어 몇 개를 들고 엘리베이터와 이삿짐센터가 상용화되지 않은 이 도시에 불만을 늘어놓았던 나 스스로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이사가 끝나고 이곳에서 나고 자란 로컬 친구에게 한국에서 나는 셀프이사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지만 이곳에서는 영영 셀프이사만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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