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편에 서는 사람 - 인테리어에이전트
얼마 전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테리어 하려는데 업체 견적을 세 군데 받았거든. 근데 세 장이 다 달라. 뭐가 맞는 거야?"
익숙한 질문이다. 이 업계에 있으면 명절만 되면 이런 전화가 온다. 예전에는 성의껏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요즘은 솔직히 말해준다.
"그 세 장이 다 맞아. 동시에 다 틀려."
전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나도 그 한숨의 무게를 안다.
앞에서 반셀프 인테리어의 착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업체에 맡기자니 비싸고, 직접 공정관리를 하자니 전문성이 없고. 검색할수록 정보는 쌓이는데 확신은 줄어드는 이 기묘한 역설.
그러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꽤 오래 멈춰 있었다.
지금의 인테리어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사실상 두 개다.
첫째, 업체에 턴키로 맡긴다. 편하다. 대신 업체의 고정비. 즉 사무실 임대료, 직원 급여, 마케팅비, 면허유지비가 견적서 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녹아 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입구에 이태리 트라버틴석이 깔려 있고, 레스토랑에는 튀르키에 산 카펫이 놓인 호텔에서 먹는 스테이크와 골목어귀 식당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값이 다르다. 고기의 품질 차이가 아니다. 호텔이라는 구조를 유지하는 부대비용이 식사 값에 얹혀 있는 것이다. 대형 인테리어 업체일수록 견적이 비싼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왠지 더 좋은 자재를 쓸 것 같고, 서비스가 더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현장에 투입되는 자재와 시공의 수준은 그 '호텔적' 만큼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객은 그 비용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지불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반셀프로 직접 한다.
이미 다뤘으니 한 줄로 줄이겠다. 비용은 기대만큼 줄지 않고,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고, 하자가 나면 책임질 사람이 없다.
두 선택지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걸 소비자도, 업체도, 시공팀도 알고 있다.
아는데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이 구조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에는 중개사가 있고, 법률에는 변호사가 있다는 건 앞서 이야기했다. 고객의 편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그 대가를 받는 사람.
인테리어에는 그 역할이 부재했다.
아니, 있긴 있었다. 다만 '현장소장'이라는 이름으로 업체 안에 묶여 있었을 뿐이다.
현장소장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히 말했다.
인테리어 프로세스의 한복판에서 모든 시공정보를 총괄 조합하는 사람. 이 사람이 수천 일의 현장에서 쌓아 온 판단력, 뛰어난 장인의 마인드를 겸비한 시공팀과의 연결성. 이런 것들은 AI로도 데이터로도 치환되지 않는다.
만약 이 사람이 업체가 아니라 고객의 편에 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비용 구조부터 달라진다.
현장소장이 독립된 전문가로서 고객과 직접 만나면, 업체라는 조직의 고정비가 빠진다. 사무실 임대료가 빠진다. 직원 급여가 빠진다. 마케팅비가 빠진다. 면허유지비가 빠진다. 시공행위가 아니라 현장관리 용역이니까.
더 이상 업체의 보스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고객의 비용절감과 행위의 완성도, 그리고 진정한 '나'를 위해 일한다. 그것이 이 전환의 본질이다.
이 전문가는 자신이 수년간 거래해 온 시공팀 네트워크를 이미 가지고 있다. 전화기 안에 검증된 목수, 타일팀, 설비팀, 전기팀이 다 들어 있다. 이 사람들과는 업체 간 거래 단가, 즉 B2B 가격으로 수급이 가능하다. 반셀프 고객에게 20~30%씩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던 바로 그 문제가, 이 한 사람의 존재로 해소된다.
고객은 자재를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쿠팡이든, 한샘몰이든, 타일 공급처든. 업체 견적서에 보이지 않게 올라가 있던 자재 마진이 사라진다. 이 전문가가 자재 사양을 잡아 주고, 발주 시점을 관리해 대행해 주면 된다.
시공팀의 계약 주체는 고객 본인이 된다. 지급도 고객이 직접 한다. 업체를 경유하지 않으니 시공비가 지연되거나 떼이는 일이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타일 박 사장이 트로트를 틀어 놓고 미수금을 세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하자가 나면? 단종업체들도 자기 이름을 걸고 일한 사람이다. 하자를 회피하면 평판이 끝난다. 업체의 하청으로 일할 때는 "어차피 업체 이름이지, 내 이름은 아니니까"라는 거리감이 있었다. 직거래를 하면 그 거리감이 사라진다. 완성도가 곧 자기 사업의 생존과 직결되니까.
인테리어에서 고객이 자기 공사의 주체가 되면서도, 전문가의 눈과 손과 네트워크를 빌릴 수 있는 구조.
나는 이것을 '세 번째 선택지'라고 부른다.
웨딩플래너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빠르다. 예식장, 스드메, 본식 영상, 허니문. 본인이 직접 발품을 팔 수도 있지만, 플래너에게 맡기면 경험에서 나오는 최적의 조합을 제안받고, 업체 간 단가 협상도 대신해 준다.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이벤트에 전문가의 동행이 필요하다는 건 이미 상식이 됐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생애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고, 수천만 원이 움직인다.
결혼에는 플래너가 있고, 인테리어에는 왜 그런 역할이 없었을까.
최근 '인테리어 플래너'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오는 움직임들이 보인다. 유명주방가구 브랜드 및 건자재 대기업들이 자사 매장에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프리랜서들이 크몽과 숨고에서 컨설팅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시장이 이 역할의 필요성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그 '플래너'가 누구의 급여를 받고 있는가.
유명가구브랜드 및 건자재 대기업 매장에 배치된 플래너는 그 회사의 자재를 판매하는 것이 본업(핵심성과지표)이다. 이해관계가 고객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다.
온라인 컨설팅은 어떤가. 5만 원, 30만 원짜리 상담으로 견적을 검토해 주고, 시공자를 추천해 주고, 일정을 조율해 준다. 도움이 되는 서비스다. 하지만 현장에 상주하지 않는다. 목수가 "여기 합판 한 장 더 대야 합니다"라고 했을 때 그 자리에서 판단해 줄 사람이 없다. 타일팀이 시공한 면의 평활도를 눈과 손끝으로 읽어줄 사람이 모니터 저편에 있다.
인테리어에는 플래닝이 아니라 '에이전팅'이 필요한 일이다.
*플래닝(Planning)은 사전에 계획을 수립하고 시퀀싱하는 것에 집중한다. 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유효하다. 에이전팅(Agenting)은 목표를 향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며, 환경 변화에 동적으로 대응한다. 인테리어 현장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벽을 뜯기 전까지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현장에 필요한 것은 '계획을 잘 짜는 사람'이 아니라 '변수 앞에서 판단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계획을 세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고객을 대신해 판단하고 싸워주는 사람.
나는 이 역할을 '인테리어에이전트'라고 부른다. 다니엘 핑크의 언어를 빌려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에이전트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같은 방향을 향할 때, 비로소 신뢰가 작동한다고.
나는 이 구조를 24년간 머릿속에 굴려왔다. 처음부터 이런 거창한 그림이 있었던 건 아니다. 2002년에 핑크의 책에 밑줄을 그었을 때는 그냥 "맞아, 나도 조직이 싫어서 나온 사람이야" 정도의 공감이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견적서 뒤에 숨은 비용. 고객의 돈으로 채워지는 업체의 고정비. 시공비를 못 받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단종업체 사장들. "이번 현장은 좀 괜찮겠지" 하며 들어가지만 결국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의 한복판에 항상 있었던 사람, 현장소장.
이 사람이 고객의 편에 서면 어떨까.
이 사람이 업체의 부속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시장에 서면 어떨까.
그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핵개인의 시대, 경량문명의 시대. 무거운 조직이 가벼운 네트워크로 재편되는 시대. AI가 한 사람의 전문가를 조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시대. 이론은 갖춰졌다.
남은 건 실행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인테리어를 앞두고 있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고, 현재 업체에서 현장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비자에게 - 당신이 견적서 앞에서 느끼는 그 막막함은 당신의 무지 때문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업체의 이윤, 시공팀의 사정, 플랫폼의 무책임이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구조 안에서, 당신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란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다. 당신 편에 서서 그 구조를 읽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의 현장소장에게 - 당신이 만들어낸 가치만큼 대우받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 업체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동결되는 것이 당신의 급여다.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쌓이지 않는다. 현장이 바뀌어도, 10년을 일해도, 당신의 이름은 시장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가진 것. 공정을 읽는 눈, 시공팀을 조율하는 감각, 현장에서 수천 일을 보낸 경험은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이 구조를 현실로 만드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 이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객과 '인테리어에이전트'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지, 하자와 보증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그 이야기는 다음 화부터 하나씩 풀어가려 한다.
이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게임에서 바람은 졌다. 거센 바람은 오히려 나그네가 외투를 더 여미게 만들었을 뿐이다. 결국 외투를 벗게 한 건 햇볕이었다.
기존의 인테리어 구조는 바람이었다. 고객에게 더 많은 정보를 쏟아붓고, 더 많은 견적을 비교하게 만들수록 소비자는 오히려 움츠러들었다. 필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옆에 서서 따뜻하게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선택지.
업체에 전부 맡기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 편에 서는 전문가가 있다면, 인테리어라는 경험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24년간 현장에서 이 산업의 안팎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확신을 증명할 차례가 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