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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Dec 12. 2017

그리움을 연단하다

나는 그리움을 원천으로 글을 쓰는, 연금술사입니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책을 읽다 문득, 이 가사가 맴돌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뒤이어 하나가 더 떠올랐습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故 김광석의 목소리가 깃든 시인 류근의 문장과, 소설가 김연수의 문장이 교대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겨울인데, 왜 가을 젖은 가사가 떠올랐을까요. 특별히 그리운 어떤 사람이 없는데, 왜 김연수의 문장이 떠올랐을까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마주한 하늘이 가을과 매우 흡사했기에. 그리고 나의 그리움은 특정한 사람을 향하지는 않으나, 존재 그 자체를 향한 까닭일 겝니다.


 이 글은 크나큰 안식처, 나의 방에서 쓰고 있습니다. 비록 잠시 빌린 거지만, 기도하며 발품 팔아 발견하고, 땀과 노력이 물큰 벤 삯으로 계약하고, 공간 구성을 직접 꾸려가는 이곳. 마음만 먹으면 쉽게 부모님 계신 본가로 돌아가기도 하고, 때때로 친구들이 머물렀다 가는 이곳. 시대의 아픔 때문에 이국에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탄식했던 윤동주님에 비하면 너무나 축복 받은 환경입니다. 게다가 정지용 선생이 시를 쓴 교토의 압천(鴨川) 보다 훨씬 더 좋은 호수가, 방 바로 뒤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외로움이 스며들고, 간혹 사무치도록 시린 까닭은, 항상 존재를 그리워하는 탓입니다.



 단 한 번의 만남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선배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제가 지닌 특성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제안해)주셨는데, 그중 ‘연금술사’라는 명명(命名)도 있네요.

<The Alchemist in Search of the Philosopher's Stone> by Joseph Wright, 1771

  ‘현자의 돌’ 연단(鍊丹)비법을 발견하려, 혹은 여러 물질을 두고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연금술사. 이것과 저것을 섞어보기도 하고, 그것과 요것을 녹여보기도 하고.. 자기 작업실에서, 대개 홀로. 하나하나 과정과정 얼마나 거대한 지적 싸움이었을지, 잠시 상상해봅니다.

 그들이 금속을 연단했다면 저는, 언어와 마음을 연단합니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을. 그 속에 담아내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고픈 감정을.

 지나고 보면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단 하나의 고민은 아주 사소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지난 노력을 깡그리 잊기도 합니다. 쓰고 다듬다 지쳐 다 부질없다 여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글이 한 편 탄생하는 데는, 이토록 사소한 연단(鍊鍛)이 쌓이고 쌓여 연단(鍊丹)에 도달함을 알기에, 고단하지만 계속 작업을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거듭될수록, 삶에 스며들어 진한 자취가 됩니다.



 그리움은 내가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원천입니다. 그러나 나의 그리움에는 실체가 없고, 정처(定處)도 없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하릴없이 떠돌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붙잡아 어떠한 실체로 만드는 한편, 간직해두고 싶은가 봅니다. 그럼 다른 이들과 공감, 공유할 수 있잖아요. 당신에게 나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이해 받을 수 있잖아요. 나아가 '우리'의 그리움으로 확장될 테고.


나는 작가입니다. 또한 연금술사입니다. 그리움을 원천으로, 언어를 매개로 연단하는.

 나는 ‘그리움’이라는 재료가 유별나게 많은, 연금술사입니다. 지금도 수첩에는, 이면지에는, 메모지와 녹음기에는, 기억 속에는, 그 외 무언가 간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그리움을 이모저모 담아두었습니다. 그네들은 모두, 제각각 따로 있으나, 언젠가 어느 순간, 한데 어우러져 새로 태어납니다. 제일 능숙하고 즐겨 쓰는 연금술은 글쓰기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나는 작가입니다. 또한 연금술사입니다.


<Guidance> by Akiane Kramarik, 2016

 그리움을 원천 삼은 이 연금술은 본향에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지속될 거예요. 왜냐하면 이 모든 작업은, 결국 영혼의 빈 공간을 채우려는 몸부림이니까. 까마득한 선조가 낙원에서 쫓겨난 뒤로, 우리 영혼의 빈 공간은 세대와 세대를 거듭하며 점점 커져 갑니다. 세상을 뒤덮은 악에 잠식되어갑니다. 그럴수록 도리어 영혼에 새겨진 인류 근원의 갈망은 선명해집니다. 온전히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누군가와의 관계. 육체, 정신을 뛰어넘어 영혼을 교감하는 사랑. 아마 그건, 우리를 만든 존재와 함께 태초에 누렸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하늘을, 본향을 사모합니다. 나의 그리움 그리움마다 본향에 대한 사모함이 담겨 있습니다.


<와온에서 라다크의 별을 보다>, 한희원, 2009

 바라건대 나의 그리움, 그리고 연금술이 세상 한 귀퉁이에서 제 빛을 내면 좋겠습니다. 글이 게시된 이곳에서,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그들의 가슴속에서, 삶 속에서. 그 빛이 퍼지고 퍼져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제 생애 마지막 순간, 그간의 연금술이 참 가치 있었노라 고백하며 본향에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딘가에서 나의 글이 당신에게 닿아, 부디 작은 빛이 되길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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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Seryuah@naver.com

*모든 독자님께 열려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표지 및 2번째 : "StockSnap" http://pixabay.com


1번째 : <The Alchemist in Search of the Philosopher's Stone> by Joseph Wright, 1771

위키피디아 항목 "Alchemist"


3번째 : <Guidance> by Akiane Kramarik,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U4if1SoufbE

(Akiane가 직접 올린 <Guidance> 그리는 과정 타임랩스)


마지막: <와온에서 라다크의 별을 보다>, 한희원, 2009

원문 : 「이묘숙의 미술 뒷담화 10. 한희원 그리움을 안고 사는 어린왕자」

http://m.blog.daum.net/queenl/115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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