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픈 우리 가족
작고 사소한 추억과 티격태격이 쌓여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진다. 사소한 계기로 틀어질 때도 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그 계기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민 후 모든 게 단절됐다.
행여 나를 걱정할까 구구절절 사소한 것도 얘기하지 못하고 괴니 업데이트가 늦게 되면 더 걱정을 하고 계신다. 아빠의 작고 큰 질병도 동생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빤 힘들어도 내색을 안 하신다. 엄만 과도하게 밝고 반갑게 전화를 받지만 나는 엄마나 여동생이 그 누구보다 예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민은 정말 불효다. 시대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핸드폰이며 세상 좋은 것이 있어도 살던 방식에 익숙해 이런 사소 한 것도 내가 챙겨드릴 수 없다. 부모님의 감기몸살에도 사소한 죽조차 챙겨드릴 수 없다. 사소하지만 그런 것들이 이제 엄마 아빤 필요한 60대 중반이시다.
부모님은 내가 커온 것을 봐오셨으니 나도 엄마 아빠 늙어가시는 시간을 곁에서 함께하며 목욕탕도 가고 괴니 퇴근 후 밥이라도 얹어 먹으러 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코로나로 더 한국에 갈 수가 없으니 그리움만 커진다. 임신 준비를 하며 이 과정을 공유하고 싶어도 전화 넘어 차분히 구구절절 설명하니 어색하다.
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의 예상치 못한 임종조차 곁에 없을 수도 있다.
뭐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여유가 있어 여행을 자주 다니거나 살갑게 서로의 생일을 챙기거나 주말에 저녁을 다 같이 챙겨 먹진 않았다. 다만 난 그냥 부모님 곁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가장 편하고 안전하고 마음을 충분히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친구랑 이런 얘기를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까지 와서 사는지. 아무리 여기보다 못하다 해도 나에겐 나를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는 곳이 한국이다. 가끔 남편조차 채워줄 수 없는 허한 마음이 몰려오면 참 견디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여기의 모든 인연이 나를 채 5-7년도 알지 못한 남들이다. 시댁도 남편조차.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다 하나 나 나고 태어난 곳이 정말 나답게 살게 해 줄 수 있는 환경이다. 여기서 일도 하고 차도 집도 있어도 호주 이민 5년 차 여전히 낯설다. 회사 생활은 뭐 말도 못 하게 여기가 좋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는 내 곁에 없다. 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