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믹스커피 1잔 저녁에 믹스커피 또 1잔
이렇게 먹는 게 이제는 빼먹을 수 없는 하루 일과 중 일부이다.
아마도 하루 설탕 섭취량을 넘을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척 비겁한 얌체짓을 한다.
매일 먹다 보니 손이 빠르다. 컵을 잡는 동시에 반대손은 믹스커피를 잡고 있고 뜨거운 물 붓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젓는다.
요즘 들어 알바유령을 만나는 게 믹스커피 처럼 되어가고 있다.
영화를 보고 생각할게 생기면 의례 그리로 발을 향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계적으로 폐관 극장의 문을 연다.
공장 컨베이어에 놓인 제품처럼, 나는 미끄러져가 늘 앉던
F열 10번 자리에 앉는다. 빠사삭~ 앗!!!
의자에 팝콘이 잔뜩 있었다.
"에이 이거 누가... 팝콘을... 여기 올사람도 없는데. 에이 참"
투덜댈 만큼 투덜대고 유령을 부른다.
검은 스크린 뒤에서 유령이 나온다.
“ㅎㅎㅎㅎ”
웃으며 나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에이스벤츄라>의 짐캐리다
불만투로 엉덩이를 털며 내가 말했다.
"이게 재밌어요? 남 골탕이나 먹이고"
뿌듯해하며 가르치듯이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습관대로 앉으니까 그렇지 ㅎㅎㅎ"
참자.
오늘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그가 중얼거리는 과몰입 노트를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인간어로 받아 적는 것.
집중하자.
“만수가 오랫동안 일, 취미 하면서 붙어버린 기계적 습관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웃긴 장면들을 말하는 거구나. 블랙 코미디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해”
※ 스포일러 경고: 이 아래부터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전개와 결말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면 공장에서 하루 종일 한 가지 동작만 반복하는 노동자의 고충을 코미디로 보여준다.
<어쩔수가없다>도 비슷하다. 다만 <어쩔 수가 없다>는 유쾌한 웃음보다는 쓴웃음을 만들어 낸다.
영화의 만수는 20년간 제지업에서 일하며 말 그대로 부품처럼 특화된다.
그래서 다른 업종에는 잘 맞지 않는 부품이 되어 버린다.
그의 취미는 분재인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오랜 반복과 습관은 그를 세부 작업에 특출 난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그가 박선출(박휘순)을 처음 살해하려고 들었던 도구가 다름 아닌 화분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만수에게 가장 친숙한 물건이고, 그래서 살해 도구로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다.
구범모(이성민)를 죽이려 했던 장소가 나무가 많은 숲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물론 나중에 범모의 집에서 죽게됨)
만수가 유독 나무 뒤에 숨는 장면이 여럿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기괴한 장면 중 하나는 고시조를 분재용 철사로 둥글게 묶는 순간이다.
그는 처음에 전기톱으로 잘라내려 하지만 전기톱은 만수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구다.
게다가 전기톱은 나무를 파괴하는 도구라 나무를 다듬고 기르는 데 익숙한 만수에게는 더더욱 거부감을 주는 도구다.
그래서 결국 그가 택한 방법이 철사다.
아들이 훔친 휴대폰, 고시조의 시체를 나무 심듯 땅을 파서 처리하는 장면도 만수에게는 익숙한 작업이었기에 선택된 방식이다.
휴대폰은 버리면 되고 시체도 다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수에게는 ‘심는’ 방법이 가장 익숙하다.
마지막에 박선출을 억지로 나무처럼 세워 심어 놓고 음식을 먹여 질식사시키고 다시 꺼내는 장면은 만수가 자신의 방법에 얼마나 고지식하게 매달려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니까 만수는 세상을 종이, 화분, 나무의 언어로만 처리하는 ‘기계적인 몸’을 가진 사람인 셈이다.
현대사회에서 부품화, 특수화된 사람이 범죄행위에서 마저도 경직된 도구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오늘 과몰입은 여기까지. 엉덩이 팝콘 좀 털어라”
검은 스크린 뒤로
유령은 어깨를 들썩이며 사라지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