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술, 구토로 이해하는 도덕성 파
연말 분위기에 친구들과 한잔 하기로 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저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한껏 취하신 분이 계셨고,
연거푸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이 와중에도 <어쩔수가없다>의 유만수(배우 이병헌)의 구토와 박선출(배우 박휘순)의 구토가 떠오르는 건
참 나도 나다.
이게 다 극장 유령의 과몰입 때문이라고 억지 안도를 해 보려 한다.
그렇지만 커지는 궁금증은 안도하고 넘길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고 오랜만의 약속을 깰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약속 장소에 일찍 온 나는 자리를 잡고 앉는다.
여느 때 앉던 극장 의자에 앉듯이.
핸드폰을 꺼내 반신반의하며 그 알바에게 문자를 보내 본다.
“죄송합니다 ㅜㅜ”
“컷과 컷 사이를 설명해 주소서, 노트의 유령이시여~~”
폰의 배경화면 뒤 어딘가에서 퇴근하지 못한 알바의 문자가 날아온다.
“오늘은 퇴근 없이 야근인가?”
오늘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그가 중얼거리는 과몰입 노트를,
최대한 알아볼 수 있는 인간어로 받아 적는 것.
집중하자.
"영화에 나오는 구토장면의 의미는?"
“양심의 경계를 넘을 때마다 등장하는 건 술과 담배고,
양심의 경계를 넘고 나서 등장하는 건 구토지.”
※ 스포일러 경고: 이 아래부터 영화의 전개와 결말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남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는 유만수는 술, 담배를 철저히 절제해 왔어.
이 시기는 안정적인 틀 안에서 삶이 유지되던 시기이지.
그리고 유만수가 법, 사회 규칙, 도덕, 양심을 지키려고 애쓰고 절제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해.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 실직을 하며 그 안정적인 틀에서 벗어나게 되고
유만수는 사회가 만든 틀에서도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지.
만수가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친구를 협박하는 장면. 죄를 죄로 덮는 장면이야.
이는 양심 없는 과감성을 보여주는데,
이때 오랜만에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지.
즉, 담배는 양심의 경계를 넘어가는 일을 할 때 피우는 물건인 거야.
아들이 훔친 휴대폰이 담배와 함께 다락방에 숨겨져 있는 것을 보아도 담배는 도덕을 거스르는 행위를 할 때 피우는 물건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어.
거기에 아들의 죄를 눈감아 주면서 아들에게 슬쩍 건네는 것도 담배지.
흡연자를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고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그렇게 쓰인다는 거야.
그래도 그나마 담배는 술보다는 낮은 단계의 양심 파괴를 뜻해.
술을 애써 참던 만수 아프고 신경 거슬리는 충치를 참던 만수.
박선출이 건넨 폭탄주를 마시고 만수는 애써 부여잡고 있던 실오라기 같은 양심마저도 던져 버리게 돼.
그 양심은 썩어 버린 충치 꼴을 하고 내던져지게 되지.
사회가 정한 일정한 경계를 이 순간 완전히 넘어가게 되고 박선출의 살해를
아무 부담 없이 마무리하게 돼.
담배와 술은 그 한계선을 넘어가는 극적인 순간을 시각, 청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야.
<어쩔수가없다>에는 도덕성 붕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하나 더 있어.
어찌 보면 앞의 두 개와는 겉모습이 반대인 것 같지만 역할은 비슷하지.
주인공 만수가 바닷가 도로에서 고시조(배우 차승원)를 살해하고 나서 파도 소리와 만수가 구토하는 소리를 오버랩시키면서 보여주지.
죄책감 때문에 자신의 범죄를 소화하지 못하고 토해 내는 장면이야.
구토 장면은 한 번 더 나오는데 이번엔 주체가 뒤바뀐 채로 나오게 돼.
만수가 박선출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이고 질식사시키는데 이때 선출의 입에서 토사물이 나오게 되지.
이건 만수의 폭력, 범죄, 악을 타자와 그 외의 사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말해.
담배, 술, 그리고 구토는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다르지만 모두 만수의 타락을 보여주지.
좀 더 정교하게 말한다면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상징계의 경계를 깨뜨리고 넘어가
혐오를 일으키는 행위를 보여주는 거야.
일상적인 섭취 행위와 신체 반응으로
인물의 법, 도덕, 상식, 양심의 깨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오늘 과몰입은 여기까지.
너 술 먹는 거니? 적당히 달려.”
꺼진 내 핸드폰 디스플레이 뒤로
유령은 사라지고,
나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나의 친구들도 하나씩 자리를 채워 가고,
우리들의 잔도 하나씩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