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뼈대만, 손님은 살을

타로마스터가 우신당에서 배운 한 가지

by 잭옵

끼익~ 우신당 문이 열리고


사락사락 종이로 만든 발에 어깨가 스치는 소리.


오래간만에 손님이 어색하게 들어왔다.


두리번거리면서 처음 보는 장소에 놀란 마음을 숨기려는 듯했다.




나는 습관처럼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훑으며 인사했다.


"지혜를 찾으신다면 옆집입니다. 여기는 어리석음을 드립니다"




내 말이 혼란을 더했는지 그 남자의 고개는 옆으로 몸은 뒤로 기울어졌다.


그래도 누군가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마음을 잡았는지 정신을 차렸다.


"네 어리석음을 찾습니다" 누가 알려준 걸 외워서 대답하듯 애써 또박또박 말했다.




자리를 권하고 나도 내 자리에 앉았다.


상담자는 불편할 정도로 내 책상에 바싹 붙어 앉았다.


또 그는 늘상 그랬다는 듯이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나는 손금을 봐달라는 건가 싶었지만 손등이 보이게 놓은 걸로 보아 그건 아니었다.


부채를 집어 찰싹 버릇없는 손등을 치며


"부정 탑니다. 손을 지우치시죠"




그 남자도 놀랐는지 잽싸게 손을 뒤로 빼고 뒤로 물러 앉았다.


민망함을 감추려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직업병인가 봅니다. 제가 타로마스타다 보니, 저도 모르게 타로 세팅을, 실수를 했네요.


이렇게 마주 앉으니까 타로 읽기 하는 줄 착각했나 봅니다. 하하하"


멋쩍은지 코트 안주머니에 있는 타로 덱 모서리를 슬쩍 보여준다.




타로마스터가 신당에 왔다니 희한하고도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움찔 눈썹이 올라갔다.


내 머리에 훅하고 뜨거운 게 지나가고 어깨가 한번 들썩였다.


'완전 재밌겠네'라는 말이 목에 걸쳐있었다.


한쪽다리는 달달달 떨려오고 있었는데 아직은 침착한 손으로 눌렀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아가씨가 놓쳤을 리 없다.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다고 재촉하듯 내 손가락을 잡고 흔들었다.


어느새 부채를 촤악~ 펴 들었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준다.


어리석음만이 인간에게 영원한....


어리석음만이...."



못 참겠다는 듯이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물었다.


"호호호 어머 타로마스터요? 타로마스터가 궁금한 게 있어서 신당을 찾아왔다???


호호호 세상엔 참 엉뚱한 일도 많아요"



밀땅을 하듯,


남자는 뒤로 누울 듯 몸을 졌혔고 우신은 얼굴을 앞으로 들이댔다.


남자는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고


"어.... 저는..."


말을 맺지 못하고 뭉갰다.




한쪽귀를 그 남자에게 돌리면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해 보세요"




"제가 얼마 전부터 타로마스터로 일을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손님들이 하나도 안 맞는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그녀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그래서요? 그래서"




그 남자는 숨을 한번 고르고 어두운 입을 천천히 떼었다.


"저는 정말 친절하게 자세하게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 주는데도...


잘해야겠다는 맘으로 그전보다 더 상세하게 말해드리는데도...


불평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여기 꼭 가보라고 손님이....."




굳은 표정은 피하고 싶다는 듯 얼굴을 뒤로 물렀다.


"아이고 초상집 얼굴이네. 여기서 그런 표정 지으면 부정타~~ "


그녀는 책갈피가 잔뜩 달린 방울을 세게 허공에 털었다.


"일단 각주쌀을 뽑아 보자고"




없는 머릿결을 뒤로 찰랑 넘기며


각주쌀통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하나를 툭 상에 내려놨다.


그녀의 검지는 진주알 굴리듯 각주쌀을 책상 위에서 돌돌 몇 바퀴 굴리더니 집어서 열었다.



우신은 '잉가르덴의 구체화' 라며 입안에서 또 옹알옹알 굴렸다.


그러다가 가벼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받아 적어요. 동쪽, 귀인, 새"



그는 꼼꼼히 펜으로 적으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되뇌었다.


머리를 천천히 좌우로 흔드는 걸로 봐서는 그 의미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 적고 나서는 펜으로 종이를 수차례 두들기면서


머리로는 과거를 두들기고 있는 듯했다.


최근일부터 점점 먼 과거를 뒤지고 있는 듯 펜의 템포도 느려졌다.


두들기던 펜을 멈추고 그 남자가 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동쪽이라면 제가 일하는 카페 동쪽에 큰 빌딩.."


"그리고 거기에 오시는 VIP 손님이 있어요. 매주 오시는"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아하~~ 거기 건물 앞 독수리. 독수리. 새"



환한 기대의 미소를 띠며


"와~~ 신기하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뭘 해야 하나요?"




이때 그녀의 입에서는 큭큭 하면서 못 참겠다는 웃음 삐져나오고 있었다.


"크크크 뭘 하긴 뭘 해요? 암튼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남들 상담받겠어?"



어쩔 수 없겠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두 번 젓더니


턱받침을 하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타로마스터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자 잘 들어봐요. 저는 대단한 걸 말해주는 듯하면서 딱 단어 3개만 던져줬죠? 맞죠?"


딱 여기까지 이해한 남자는 고개를 살짝 반만 끄덕였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요게 뽀인트라고요. 알듯 모를듯한 정보만 던지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상대가 상상하게 만드는 거요."


그녀는 뒤로 물러나 손으로 집 모양을 만들면서 하늘을 찔렀다.


"집 뼈대만 내가 만들고 나머지는 상대가 스스로 상상하면서 만들게 해주는 거예요.


기초공사만 내가하고 나머지 공그리(concretization) 작업은 상대에게 시킨다.


아셨죠~~~"




그제야 타로카드로 어떻게 집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그 남자는


"아~~~ 그거 군요. 그거였어요. 역시 현명하시군... 아니 아니지. 참으로 어리석으십니다."


남자는 스스로도 웃긴지 피식 웃었다.




우신은 썩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아들으시네. 호호호"



촵~~ 부채는 산뜻하게 접어지고 책을 한번 툭 건드리고


제자리에 놓였다.



"이제 좀 도움이 되셨나요? 허허허허"


검은 뿔테 안경을 만지면서 그를 바라봤다.



타로마스터는 코트 안주머니를 다시 한번 눌러 확인하더니


조심스럽게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사락사락, 종이 발이 다시 어깨를 스쳤다.


그리고, 끼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 안에 얇게 퍼졌다.






각주쌀통에서 굴러 나온 설명들

잉가르덴의 ‘구체화(concretization)’
폴란드 철학자 로만 잉가르덴(1893–1970)은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완성된 집”이 아니라 “뼈대만 세워진 건물”에 비유했다. 텍스트에는 대략적인 구조와 윤곽만 있고, 구체적인 얼굴·방·공기 같은 것들은 독자가 읽는 순간마다 자기 경험으로 채워 넣는다고 봤는데, 이 과정을 ‘구체화(concretization)’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작가는 “동쪽, 귀인, 새”까지 쓰고, 그 뒤에 카페·빌딩·VIP·독수리를 갖다 붙이는 건 독자 몫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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