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떠난 오후의 공간은 물속처럼 고요합니다.
소란했던 세상의 속도가 잠시 멎은 화요일, 저는 바 한가운데 서서 쓰임을 다하고 멈춰 있는 사물들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차를 내리던 다구, 커피를 품었던 잔, 그리고 빛의 궤적을 묵묵히 견뎌내는 의자. 그것은 오직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겨지지만, 아무도 없는 텅 빈 시간 속에서도 저마다의 숨결로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순간을 기다리는 그 정갈한 기다림이, 오늘따라 참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창가에 둔 작은 유리병의 소식도 전해야겠군요. 매일 아침 차가운 물을 갈아주었던 마른 가지에서 마침내 벚꽃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아쉽게도 그 곁을 지키던 목련은 생의 동력을 다한 듯 더는 꽃잎을 열지 못한 채 시간이 멈춰버렸습니다.
죽음과 탄생, 멈춤과 피어남이 한 병동에 머무는 것을 봅니다. 조만간 저 벚꽃도 가장 찬란한 순간을 잠시 내어준 뒤 이내 바닥으로 흩어지겠지요. 피어나고 스러지는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왜 이토록 가슴을 저리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한 달 동안, 저는 이곳에서 그 꽃잎이 겪어낼 덧없는 생애를 조용히 지켜볼 참입니다. 세상의 소음에 깊이 베인 날이 있다면 언제든 이 고요한 은신처로 숨어들어오십시오. 멈춰진 사물들과 찰나의 꽃잎이 당신의 비워진 잔 곁을 다정히 지켜줄 테니까요.
하카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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