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박찬욱

왜곡된 합리화는 극단적인 책임감의 산물

by 재승

책을 믿고 사는 작가들이 있는 것처럼, 영화도 믿고 보는 감독들이 있다. 그중에 한 명이 박찬욱이고, <어쩔수가없다>는 하도 인스타니 유튜브니 언급을 많이 해서 안 보러 갈 수가 없었다.


주인공 '만수'는 오래 일하던 태양제지에서 정리해고를 당한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가장으로서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 제지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본인과 비슷한 경력의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데, '만수'는 거기서 결심을 한다. 자신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경쟁자 세 명을 모두 살해하겠다는 결심. 그렇게 시작된다, '만수'의 전쟁이.


텍스트를 풍부하게 연출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도 느낀 건데,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정보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인지하지 못한 부분까지 있을 테니까,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칠 정도. 솔직히 영화를 보고 감상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를 해석하려고 하는 순간 어떤 요소를 빼놓고 설명하려면 불완전한 것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내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하고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 감조차 잡을 수가 없어서 글을 쓰기가 상당히 망설여졌다.


해설은 유튜브에 너무 잘 나와있으니까, 그냥 떠오르는 내 생각을 써야겠다.




─ 비판에 대해


영화를 보기 전에 네이버 평점으로 대충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고 가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편견 없이 바라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익히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애초에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네이버 평점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안 좋은 점수를 준 걸 보고 놀랐었다. 그들의 비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1점 혹은 2점을 준 사람들 대부분이 그저 내용 없는 비난뿐이라 그런 것들은 제외하고, 들어가기 이전에 이 글이 박찬욱 감독의 무조건적인 옹호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1. 개연성


크게 비판받는 부분이 개연성인 것 같은데 그들은 어느 지점에서 화가 났나.


영화의 제목인 '어쩔수가없다'는 주인공인 '만수'가 경쟁자들을 살해하면서 되뇌던 말이다. 표면적으로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경쟁자들을 살해하며 진행되는데, 그 지점에서의 개연성이 문제가 된 것이다. 하루아침 사이에 직장을 잃은 가장의━가족들을 위해 새로운 직장을 얻어야 한다는─책임감이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살해한다는 극단적인 결심으로 변모한 그 과정이 어색하다는 거다. 영화에 몰입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가 개연성임을 십분 동의하고, 그렇기에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나 선택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감독이 가져가야 할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그런 것들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살인이라는 것이 그것의 주체가 되는 사람의 인생을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갈라놓을 선택임과 동시에 객체인 타인의 인생에서는 후자의 가능성을 아예 지워버리는 행위로,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어른이며 또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영화 속에서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 맞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만수'가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다 큰 어른, 그리고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구겨가며 화장실 앞에서 무릎도 꿇어보고 다른 제지회사의 면접도 보기도 했으니까. 그런 노력들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이 남자가 느끼는 초조함이 점차 커지는 심리적 묘사 또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제지회사와 관련된 직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만수'의 고집에도 사람들은 의아심을 느끼고 있는데, 오래 일한 전문직으로서 자신의 직업을 향한 프라이드와 직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를 볼 때 개연성과 관련된 의문이 한 번도 머릿속에 생긴 적이 없어서 영화를 향한 이런 비판을 보게 되었을 때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내가 조금 둔감한가 싶기도 하고, 경쟁자가 세 명인 게 조금 많았나 생각하기까지 했다. 원작이 되는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아마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이 그럴 거다.), 그 책도 독자들이 개연성을 문제 삼았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전달하는 매체가 책이 아니라 영화라서 그것이 가진 능력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개연성에 대한 의아심 때문에 영화에 몰입을 못해서 그것을 지적하는 건 이해하겠는데, 별점 테러를 하면서까지 욕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그건 그냥 기대를 많이 받는, 잘 나가는 감독을 향한 맹목적인 비난으로 보였다. 박찬욱 감독도 개연성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고 직접 밝힌 것을 보면 씁쓸했다. 각각의 살인마다 점차 '어쩔수가없다'는 말이 다르게 들렸는데,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어쩔수가없다'라는 제목이 하나의 조롱으로 쓰이는 걸 보면, 나도 당연히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들이 참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개연성 그렇게 따질 거면 다른 영화는 어떻게 보나 싶다(이거는 좀 맹목적인 옹호가 맞긴 하다.)


2. 난해함


또 하나 지적받는 부분은 난해함이다, 아마 영화 속을 꽉꽉 채운 요소들에서 오는.


흘러넘칠 정도의 요소들이 있다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확실히 필요─필요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망설여지지만─이상의 요소들이 있긴 하다고 생각한다. 비판받는 요소에 대해서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재미적인 요소고, 또 하나는 기괴한 요소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 가장 대중 친화적으로 만들었다고 얘기한 걸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아마 재미적인 요소를 많이 넣어두었기 때문이겠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다. 재밌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엉뚱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도 그럴게 그 장면들이 대놓고 웃을만한, 그러니까 마음 편히 웃으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위협받고 있을 때나 진심으로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그럴 때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이나 대사들에 엉뚱한 요소들을 넣어놓았다. 그것이 긴장 완화의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등장인물들은 웃고 있지 않음을 통해 관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리감 덕분에 나는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위 개연성 이야기와 연관되어.


논란이 되는 지점은 엉뚱한 요소들이 쓰인 빈도와 장소의 적절성이다. 조금 많이 쓰인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해도, 뭐 코미디라고 장르를 정한 거면 웃겨야 코미디지. 그 요소들이 캐릭터들의 매력을 떨어뜨렸다는 평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쓰인 장소들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재미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기괴한 요소도 같은 맥락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기괴한 요소가 쓰인 것에 대한 기대효과 대비 오히려 불쾌함을 더 주고 있다는 것이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술을 마시고 자신의 앓던 이를 투박한 도구를 사용해 빼낸다거나, 살해한 경쟁자를 분재하듯 똘똘 말아버린 것을 보여주는 것. 이런 것들도 볼 때 크게 불쾌하진 않았는데, 그저 영화적 요소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얼굴이 찌푸려지긴 했어도 못 보겠다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정리를 해보면 두 개의 요소를 사람들이 좋게 봐주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혹은 즐기는 데 있어서 방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다. 필요 이상으로 자주 쓰였다거나, 필요 이상의 방법으로 전달되었다거나. 이 말은 이해가 되긴 한다. 그렇지만 나는 애초에 거슬리지 않았어서 논리적으로 어떻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보기 전에 그런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봐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영화 속에 숨겨놓은 이야기들이 많은 것들도 난해하다는 평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동의를 하는 바인데, 생각의 가공이 필요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건 영화를 보는 데 더 많은 체력을 쓴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를 오히려 좋아하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사들이나 행동들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편이라 몰입에 방해가 되긴 했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이 대사는 어떤 의미일까와 같은 질문들이 머리에서 해결되지 않았는데 영화는 계속 흘러가니까. 조금 많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깊게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수준이 낮다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영화에 나쁜 평점을 주지 않았을까. 대중 친화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한 것이 목적이었으면 완벽히 성공했다는 확실히 아니다. 아마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 중간 지점을 찾다가 조금은 애매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 주제에 대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과 동의어가 되겠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1. 정리해고


모든 것의 원인이 바로 정리해고이다. 태양제지에서 열심히 20년을 넘게 일한 '만수'를 포함한 노동자들을 외국인 경영자들이 들어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한다며 해고를 시켜버린 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다. 의도된 건지 아니면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을 걱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실과 마찬가지로 영화 내에서도─그러니까 절대적인 시간을 봤을 때─상당히 짧은 시간 내에 해고가 이뤄진다. 어떤 말을 할 것도 없이 갑자기 길바닥에 내몰린 노동자들. 그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물론, 사회적 보호막도 없이 정리해고를 쉽게 시켜버리는 상황을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맞겠지만 그것이 주제는 아니라는 점을 먼저 밝힌다.


마지막에 죽인 경쟁자를 제외하고 '만수'를 포함해서 나머지 경쟁자 둘도 다니던 제지회사에서 모두 실직을 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같은 고난을 겪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만수'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에 노력하지만 결국 제지회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첫 번째 희생자 '범모'는 실직을 당한 후 알코올 중독에 걸린다. 두 번째 희생자인 '시조'는 구두 가게에서 아마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린 손님한테 무시를 당하더라도 어쨌든 인생을 살아간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따 하고,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


'만수'가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그러니까 자신의 경쟁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가짜 제지회사를 만들고 구인광고를 낸다. 그렇게 '범모'와 '시조'를 찾게 되는데, 구인광고를 보고 변한 '범모'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해고를 당하고 술에 절어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다가 광고를 본 후 술도 끊고 사람답게 변화한 것을 보면서 사람에게 직업이란 무엇일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쉽게 해고시키는 경영진들이 있다는 것도 생각이 났다. 이건 영화니까 크게 감정의 동요가 생기지 않지만, 같은 사태가 현실에도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우면서 무섭기도 하다.


당연히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해고를 시켜버린 회사의 경영진들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너네 나빠!'라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는 행위이고, 우리는 그런 체제를 바꿀 힘이 없으니까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난 뒤 해야 하는 올바른 사고는 그런 사태를 대비하는 것, 그리고 같은 상황을 겪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2. 살인으로 인한 변화


'만수'가 세 번의 살인으로 인해 변하게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 영화에서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을 대하는 태도라거나, 그것을 합리화하는 방식에서 '만수'는 큰 변화를 보여준다.


가장 극명했던 부분은 마지막 희생자인 '선출'을 살해할 때다. '선출'이 본인이 너무 바빠서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말을 하는데, 그 자리를 회사에 만들어 달라며 '만수'는 제안한다. 하지만 결국 '만수'는 '선출'을 죽이게 된다. 그러면서 '만수'는 새로운 자리가 생겨 자신이 들어가게 되면 '선출'을 죽일 필요가 없겠지만 그건 앞에 죽은 두 사람의 목숨이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는 말을 한다. 무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만수'를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범모'를 죽일 때만 해도 손발을 벌벌 떨며 시도하기도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마지막에 와서는 그저 쉬운 일처럼 뚝딱 해내는 것을 보면 이제 더 이상 '만수'는 우리가,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이 알던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결국 '만수'는 원하는 자리를 얻게 되지만, 동료를 중요하게 여겼던 이전의 그와는 다르게 새로 얻은 자리에서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얻었다는 것에만 집중하는데, 변화된 것들에 가족도 껴있음을 '만수'가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는 첫날 마중하는 그들을 보며 알 수 있다. 범행을 의심하는 아내와 아들의 의심쩍은 표정과 오프닝과 대비해서 비가 많이 오는 날씨, 그리고 평소에 딸이 한 번도 들려주지 않던 첼로 연주를 '만수'가 출근한 뒤 시작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만수'의 앞으로의 인생을 어느 정도 예상해 볼 수가 있게 된다. 결코 안정적이지 못한 직장과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가족들 그리고 '만수'가 결국 느끼게 될 가정에서의 소외.


그에게 남은 건 살인을 통해 변하게 된 타락한 인간성과, 가족들로부터의 고립이다. 영화는, '만수'를 토대로 "직장을 잃게 되어도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와 같은 교훈을 남기고자 한 건 당연히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낭떠러지에서 극단적인 책임감이 만들어낸 왜곡된 합리화는 잘못된 결심을 낳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등장인물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직관적인 교훈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작품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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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을 하자면,


원래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기에 기대하고 봤는데 좋게 보았다. 나한테는 소재가 꽤나 신선하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와서 오히려 몰입해서 봤다. 영화적 허용이라고 해야 될까,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개연성이 부족한 사건이나 등장인물들의 엉뚱한 행동들이 어색하지 않았으며 매력을 더해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139분이라는 영화 속에 많은 복선들이나 미장센들을 넣으려고 해서 난해해지게 된 것은 있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 또한 재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특유의 카메라 무빙이나 줌인과 아웃으로 장면 전환의 효과를 더하는 것에 꽤나 쾌감을 느끼는 편이라서 그것도 필요 이상으로 혹은 적절하지 않게 사용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기생충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두 영화가 종류가 다른 느낌이라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를 나누고 싶진 않고─그럴 능력도 없고─그만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의 소설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 봐야겠다.


어쩔 수가 없다.


아니,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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