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본 진실
약국 앞 유산균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100억 마리', '1000억 마리', '장까지 살아서 도착'... 화려한 문구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가격은 천차만별이고, 어떤 게 좋은 건지 도통 모르겠다. 결국 가장 비싼 걸 집어 들며 생각했다. '비싼 게 좋은 거겠지?'
20년 넘게 유산균을 연구하며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다.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는데.
이름이 같다고 같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락티플란티바실러스 플란타럼이요? 그거 저희 제품에도 들어있어요!"
같은 이름의 균이 들어있다고 같은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건 마치 '김철수'라는 이름만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대한민국에 김철수는 수천 명이 넘는다. 서울 강남에 사는 1990년생 김철수와 부산 해운대에 사는 1990년생 김철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구분하려면?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
유산균도 마찬가지다.
유산균의 이름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속(genus) - 가장 큰 분류. '삼성'이라는 회사명과 같다.
종(species) - 세부 분류. '갤럭시'라는 제품군과 같다.
균주 번호 - 균주 고유번호(Strain number). 바로 'S24 Ultra'같은 정확한 모델명이다.
스마트폰으로 비유하면 쉽다. '삼성 갤럭시'라고 하면 수십 가지 모델이 있다. 갤럭시 S24, 갤럭시 Z 플립, 갤럭시 A 시리즈... 이름은 비슷해도 성능, 카메라, 배터리 용량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정확한 모델명으로 구분한다.
유산균도 똑같다. 같은 '락티플란티바실러스 플란타럼'이라는 이름을 가진 균이 수백 종류다. 이름은 같지만 균주 번호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균이다. 어떤 건 장 건강에 좋고, 어떤 건 면역력에 좋고, 어떤 건 피부에 좋다. 그래서 유산균을 고를 땐 '락티플란티바실러스 플란타럼'만 보면 안 된다. 균주 번호까지 확인해야 한다. 모델명 없이는 어떤 갤럭시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균주 번호는 그냥 붙이는 게 아니다.
연구진이 전국을 돌며 김치, 된장, 막걸리에서 수천 종의 균을 수집한다. 그중에서 가능성 있는 균주를 선별하고, 안전성을 검증하고, 기능성 임상시험을 거친다. 특허를 출원하고, 논문을 발표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고유번호를 받는다.
한 균주가 균주 번호를 얻기까지 보통 4~5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그 숫자 하나에 수십 명의 연구진이 쏟은 시간과 노력이 담겨있다.
문제는 현재 규제가 '종' 수준까지만 표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제품에 "락티플란티바실러스 플란타럼 함유"라고만 써있다면, 그게 어떤 균주인지 알 수 없다. 피부에 좋은 건지, 면역에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 검증도 안 된 균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락티플란티바실러스 플란타럼 HY7714"처럼 균주 번호까지 써있다면? 이 균주의 정확한 기능과 임상 데이터, 안전성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어떤 균주는 미국 FDA에 신규 기능성 소재로 등록되어 안전성까지 입증받기도 했다. 당연히 그런 균주가 들어간 제품이 더 신뢰할 만하다.
다음에 유산균을 고를 땐 이것만 기억하자.
✓ 균의 개수보다 어떤 균인지가 중요하다
✓ 라벨 뒤 성분표에서 '속 + 종 + 스트레인 넘버'를 확인한다
✓ 균주 번호가 없다면, 검증되지 않은 균일 가능성이 크다
✓ 가격이 비싼 이유는 그 숫자 하나에 담긴 시간과 노력 때문이다
약국 앞에서 망설이던 그날, 나는 결국 가장 비싼 제품을 샀다.
집에 와서 라벨을 뒤집어 봤다. 성분표에 균주 번호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아, 이래서 비싸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당신이 지금 먹는 유산균, 주민등록번호 확인해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