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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사장님 놀이의 결말

사업은 망했지만, 삶은 여전히 '나를 키우는 중'

by 반백수 남편

<실패의 서막>


"사장님" 소리를 듣고 싶어 시작했던 사업의 세 차례 전사(戰死) 이야기.


통장 잔액은 바닥이었지만, 그때마다 자존심을 대출받아 썼습니다. 문 닫은 가게 앞에서 '나는 대체 뭘 잘못했나'를 곱씹을 때, 자책만큼 확실한 BGM은 없었죠.

하지만 그 모든 '자칭 사장님 놀이'가 끝났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모든 실패가 저를 길러냈다는 사실을.


마음은 '이연복 셰프', 실력은 '새내기 인턴'인 이 남자의 웃픈 성장 기록입니다.


첫 번째 실패, 미숙함이 만든 '성실함'이라는 자산


처음 시작했던 미용실. 기술과 경험은 부족했고, 마음만 앞선 건 국회의원 출마에 나선 후보 같았습니다. 손님에게 민폐만 끼쳤던 미숙함이 부끄러워 밤잠을 설쳤습니다.

덕분에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라는 뼈아픈 진실을요. 그때의 후회가 지금의 '성실함'이라는 가장 단단한 자산을 만들어줬습니다.

이것만큼은 은행이 압류하지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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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실패, 매출이 거품처럼 사그라들 때 배운 '온도 경영'


횟집을 운영하던 시절, 저는 '사장님은 묵직해야 한다'라는 이상한 소신 때문에 불친절하다는 피드백을 자주 들었습니다. 몸이 고단했으니, 표정은 당연히 지쳤죠.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소식에 매출이 쪼그라들었고, 더 이상 손님이 찾지 않을 때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단골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말했습니다.


“언제나 맑은 날만 있을 수 없는 게 인생이란 날씨지.”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장사는 사람의 온도로 하는 일이며, 차가운 사장님은 손님도 차갑게 만든다는 사실을요.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저의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운 회복탄력성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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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실패, 영업을 포기하고 '마음'을 팔다


한창 영업의 요령과 단맛을 알아가려 할 때 세상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로 전환했죠. 사람 만나기가 죄처럼 느껴졌습니다.


"보험, 안 들어요!”


차가운 거절 앞에서, 통장 잔액은 낭만을 싫어한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사람의 마음을 가장 깊숙이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팔지 않아도 괜찮은 대화, 진심. 거기서 진짜 고객이자 인생의 소중한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장은 실패가 만들어낸 흑역사라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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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세 번의 사업 실패는 저를 파산시켰지만, 파멸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 고통은 저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사업은 접어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오뚝이 같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성공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남지만, 실패는 술자리에서 끝없이 우려먹을 수 있는 좋은 사람과 최고의 안줏거리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여전히 두 가지 감정을 느낍니다.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실패가 아니고, 단지 배움의 대가를 치렀을 뿐이다라는 뻔뻔함입니다.


“사업은 망했지만, 제 삶은 여전히 무궁무진하게 재밌게 흘러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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