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by 부러진 연필

설날이다.

구정이라고 했던 그날이다.

우리 집은 골목 제일 안쪽에 있다.

어제 그제 저녁 고소한 냄새, 매운 냄새, 술 냄새로 가득 찬 골목을 화가 나서 그만 내달려 지나쳤다.


우리 집도 명절은 명절이다.

할머니가 부엌, 아니 ‘정지’라고 했다. 거기서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아가? 안 춥뜨나? 으이? ”


나는 아무 말 없이 곱은 손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 온기와 낡은 꽃처럼 생긴 낮은 상위에 놓인 우쭈시 - 지금도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 가 분을 조금 삭이게 해 주었다.


“아가, 무바째? 내 새끼 줄라꼬 할무이가 해나따 아이가.”


오후 내내 논두렁으로 산으로 돌아다닌 발간 볼과 손이 바쁘게 우쭈시를 맛본다.

“마신나? 단술 주까?”


기름이 흥건한 찹쌀 부침 속 단팥이 지독하게 달지만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인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긴 단술을 건네주는 할머니 손에서 아지랑이처럼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아이고 내 새끼 잘 묵네”


단술을 삼키는데 대접 왼쪽으로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마시지도 않으면서 내 입 모양을 똑같이 따라 했다.

내가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턱을 몇 번이고 올렸다 내렸다 한다.

누우면 열 사람도 잘 수 있을 것 같은 방 한 구석 정지로 난 작은 문에 붙어 앉아 할머니가 나머지 분도 삭여주기를 기다리다 잠이 온다.


“내 새끼를 누가 그랬노? 으이”


다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 분이 풀렸다.

내일은 연날리기 구경을 가야겠다.

나도 방패연이 있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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