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파파야 향기
몇 번을 돌려 보았는지 모른다.
누군가 심란한 마음이 든다고 하면 나는 ‘그린 파파야 향기’를 삶의 진정제로 권할 것이다.
90년대에 20대로 보낸 나는 영화 포스터만 보아도 마음이 설레는 편향적 영화 마니아였다.
나름 많은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영화 중에 비영어권 영화는 아예 볼 생각을 안 했다.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그냥 겉멋이 든 사람쯤으로 이해를 했다.
그래서 ‘그린파파야향기’라는 영화는 포스터 속 청순한 소녀가 인상적인 것 말고는 들여다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냥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상영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2025년 12월 언저리에 만난 영화는 지금 디톡스가 필요한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의 사랑이 있지만 흔한 키스신이나 포옹신조차 없는 영화이다.
여백의 미가 한껏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무이가 파파야를 가지고 무채 비슷한 음식을 만드는 장면은 처음에는 곱고 가는 파파야채가 어떻게
나오는지 몰랐다가 나중에 보니 알게 되었다.
껍질을 벗긴 파파야를 잡고 칼로 툭툭 내리친 후에 다시 채칼로 벗기니 얇은 파파야채가 만들어진 것이다.
파파야를 물로 씻고 칼로 다듬는 동안 나는 소리는 거슬리는 것이 하나 없이 asmr처럼 듣기가 좋았다.
버려도 되는 파파야를 반으로 쪼개서 안의 알맹이들을 감상하는 무이를 보면서 현자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성껏 갓 지은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본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무이
쿠옌을 연모하지만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는 무이
흔한 이야기 틀에서는 무이가 쿠옌을 유혹하든 쿠옌이 무이를 범하고 버리든
통속적인 이야기 구조로 갔을 것이다.
무이는 쿠옌이 서서히 스며들게 하였다. 전혀 의도치 않게.... 시나브로
쿠옌도 너무나도 진중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제대로 사랑해 줄줄 아는 남자이다.
나는 드뷔시의 곡을 피아노 치는 그의 모습에 반했고
약혼자와의 정신적 결별에서부터 무이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도 좋았다.
쿠옌의 악보에 무이의 얼굴라인이 그려진 장면은 설렘을 가져왔다.
무이는 그 그림이 자신이라고 몰랐던 걸까?
립스틱을 꺼내려는 서랍에서 그림을 보았으면서도 담담히 제자리에 놓는다.
약혼자는 단번에 악보에 그려진 무이 그림을 알아차리고 아주 쿨하게 떠난다.
무이의 뺨을 때리기는 했지만 자신이 사람 하는 남자에 대한 분노치 고는 아주 쿨하게
쿠옌은 무이에게 글을 가르친다. 받아쓰기하느라 목이 떨어지는 무이를 오른손으로
살포시 올려주는 쿠옌의 손길은 다정함이 뚝뚝 떨어진다.
무이를 딸처럼 아꼈던 마님이 금목걸이와 아오자이를 죽은 딸의 몫으로 챙겼다며 어려운 형편에도
내어주는 장면은 요즘처럼 미친 금시세에 더 몰입 헤서 보기도 했다.
금이 상당했다.
무이는 아이를 가졌고 쿠옌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내가 산 90년대는 마초와 같은 기질의 남자들이 많았는데 쿠옌은 시대를 앞서간 남자 같다.
무이가 베트남전쟁이 나기 전에 쿠옌과 프랑스로 떠났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쿠옌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 가능하지 않을까?
그냥 멍 때리고 싶은 날, 혹은 마음이 심란할 때 나는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