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눈 그리고 엄마 사진 전시회
3일 전은 막내딸의 생일이었다. 밤 12시 정각을 기다려 온 가족이 북적이며 축하를 건넸고, 눈을 비비며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3일 후, 나의 마흔여덟 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어젯밤 12시, 나도 내심 누군가의 축하를 기대하며 잠시 깨어 있었다. 하지만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할 남편과 학업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한 고3, 중3 두 딸의 고단함을 알기에 그 기대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 혼자만의 자축 파티를 열며 마음 한 자락을 일기장에 남기고 잠이 들었다. 가장 편안하고도 쓸쓸하지 않은 밤이었다.
생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달려와 축하를 건네는 막내와 하루 종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해피 벌스데이"를 외쳐주는 큰딸 덕분에 마음이 금세 부유해졌다.
무뚝뚝한 남편은 말없이 안아주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했다. 매년 익숙한 이들에게 받는 선물 사이로 뜻밖의 카톡 알림이 울렸다.
평소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우연히 내 생일을 알게 되어 마음을 전해온 이들.
예전에 나도 누군가에게 건넸던 그 예기치 못한 정성이, 오늘은 커다란 울림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생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케이크와 촛불이다. 초코파이에 초 하나만 꽂아도 그날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저녁 파티를 약속했지만, 갑작스러운 비보가 날아들었다. 다소 거리가 먼 장례식에 가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내 생일인데…’ 하는 마음이 아주 잠깐 고개를 들었지만, 슬픔을 당한 가족의 아픔에 비하면 나의 생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12시의 자축으로 이번 생일을 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하늘에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내려왔다. 하얀 눈이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버리는 눈이 내 마음 위에도 포근히 내려앉았다.
장례식에 가는 길, 어두워진 밤하늘 너머로 해가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반대편 세상의 아침을 밝히러 가는 그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남편은 생일인데 아무것도 못 해줘서 미안하다며 케이크라도 사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이미 충분히 많은 선물을 받았으니까. 촛불 한번 못 켜면 어떠냐며 쿨하게 남편을 다독였지만, 집 문을 여는 순간 진짜 이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잠들었을 거라 생각했던 거실은 불이 켜있었지만 유난히 조용했다.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문고리 사이에 걸린 가랜드가 내 머리에 닿았다.
예쁜 노끈과 앙증맞은 집게 핀에 걸려 있는 사진들. 그것은 아이들이 정성껏 준비한 ‘엄마 사진 전시회’였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확인하곤 결국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사진을 인화한 종이는 번듯한 인화지가 아니었다.
평소 아이들이 연습하던 악보의 뒷면, 그 이면지 위에 엄마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 인쇄된 악보가 비치고 종이는 얇아 하늘거렸지만, 악보 이면지를 골라 엄마의 웃는 얼굴을 출력했을 그 귀엽고도 애틋한 발상이 내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세상 그 어떤 비싼 액자보다 빛나는 전시였다.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큰딸)
“나를 태어나게 해 준 엄마인데 감사 인사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작은딸)
“일단, 생일 축하합니다. 하하하!” (조카)
중간중간 걸린 손 편지 뽑기 이벤트까지, 더 이상 특별할 수 없는 밤이었다.
우리 집 세 여자의 생일이 며칠 간격으로 몰려 있어 늘 ‘한꺼번에’ 해결하곤 했던 지난날들.
하지만 이번 생일만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던 나의 생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축하해 준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악보 이면지 위에 그려진 내 모습처럼, 나의 마흔여덟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선율이 되는 삶이기를 소망해 본다.
봄이 오는 길목
오늘 내린 눈은, 참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