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 야근비는 얼마줘요?"

마음생태 복원기(5), 내 마음 숲의 워라밸은 '정지'의 허용

by 성낙필

“이 회사는 다른 회사와 다른 특별한

복리·후생이 있나요?”


“야근비나 특근비는 얼마인가요?”


얼마 전 면접을 보러 온 20대 후반의

입사 지원자가 내게 질문한 것이다.


나는 “이 친구 당돌하네”라고 놀라면서도

요즘 MZ세대들이 말하는 워라밸이란 게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동안 워라밸이란 게

일의 양을 줄이거나

쉬는 시간을 확보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얼마나 그 '쉼'을 즐길 수 있는지가

더 큰 포인트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나는 요즘 톡을 예전만큼 빨리 확인하지 않는다.


샤워할 때 휴대폰이 부르르 떨려도

샤워기 밑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지금 확인해야 예의지.’

‘바로 답해야 관계가 유지되지.’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오랫동안 나는 그런 믿음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깨달았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예의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아주 오래된
‘마음의 비밀번호’였다는 것을.



59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이 번호를

바꿔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빨리 확인해야 한다.'

'즉각 반응해야 한다'라는 번호를

무의식적으로 누르며,


내 마음 생태계의 평화보다 타인의 응답에

내 안위를 맡겨버렸던 것이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이 반응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걸.




“위험한 환경에서 오래 살아남은 생물일수록

작은 낌새에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건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한때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없이 반복된 위협과 실패가

몸에 남겨 놓은 기억.


그게 경계 반응이라는 형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는

믿었던 친구나 지인들에 대한

“배신감”의 기억장치가 머릿속의 경보기를

작동 대기 시켜 놓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몸이 여전히 옛 신호에 반응할 때다.



자연의 많은 생물은 그 반응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여 즉각 실행할 수 없다.


환경이 충분히 달라지고,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적응의 방향으로 진화한다.


그러나 사람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이 반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아주 작게나마 다른 선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요즘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연락이 늦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생일 축하가 조용해도 관계는 그대로였고,


가끔은 내가 먼저 내려놓아도

아무도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즉각 반응하지 않으면

관계가 무너질 거라고

너무 오래 믿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늘 먼저 대비했고,

먼저 확인했고,

먼저 마음을 써버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휴대폰 비밀번호 같은 거였구나.
59년 동안 나는
같은 비밀번호를 눌러왔다.



“빨리 확인해야 한다.”

“지금 반응해야 한다.”

“관계는 즉각 관리해야 한다.”


그 방식이 틀릴 리 없다고 믿어왔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잠깐 손을 멈췄을 뿐인데,






잠금 화면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세상이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괜히 내가 대단한 걸 해낸 사람처럼

허탈하게 웃음이 났다.


‘아니, 내가 그렇게 복잡하게 살 필요는

없었던 거였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종종 예전 비밀번호를

누를 것이다.


괜히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괜히 혼자 앞서갈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이건 고장이 아니라는 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기 위해

몸에 남아 있던 옛 반응이었을 뿐이라는 걸.



내 마음 숲에 워라밸을 선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자동 반응을
잠시 ‘정지’시킬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는 것이었다.




내가 20~30대 때

한 달 20일 이상의 야근, 철야를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은,


내가 요즘 MZ세대와

생각의 구조가 달라서가 아니며

잘못도 아니었고, 이미 지나간 과거이다.



“그건 그 당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책임이었고 데이터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런 옛 반응과 데이터를 존중한 채,

조금 다른 선택을 해도 된다.”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지금의 나는

충분히 잘 사는 중이다.


오늘 나는 나에게 이기성을

선물하기로 했다.


연락이 좀 늦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히는 중이다.


오랜 시간 자연을 관찰하며 배운

가장 큰 지혜는


‘생존 뒤에는 반드시
휴식이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제 내 마음의 경보기를 잠시 끄고,

숲의 고요한 휴면기처럼 나 자신에게

온전한 워라밸을 허락하려 한다.



오늘은 30분만 휴대폰을 꺼놔야겠다···.



나는 그를 뽑고 싶었다. 그의 당돌함이 우리 조직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가지'라는 잣대를 들이댄 임원들의 반대에 그는 결국 우리 숲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한 투명한 질문이, 누군가에겐 생태계를 위협하는 침입자로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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