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쥐 입니까?

마음생태 복원기(6), 집착이란?

by 성낙필

대학 시절, 심리학 강의 시간에

이런 임상실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쥐 네 마리를 각각 다른 상자에 넣고

4개의 육상트랙 출발선 앞에 놓는다.


그리고 상자 출구 앞, 바닥에는

약한 전류를 흐르게 한다.


문이 열리면 쥐는 앞으로 나아갈수 있지만,

몇 걸음도 못가 발바닥에 전기가 흘러

전진하기 어렵다.


각 트랙의 종점에는

출발선에 있는 쥐들이 가장 원하는 것들이

놓여 있다.


1번. 욕망 쥐 : 발정기의 암컷,
2번. 굶은 쥐 : 맛드러진 치즈,
3번. 갈증 쥐 : 시원한 생수,
4번. 엄마 쥐 : 새끼 새앙쥐.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느 쥐가 가장 많이, 가장 자주 질주를

시도할 것 같습니까?”


교양 강의라서 약 3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수강을 했지만

나 처럼 실험 결과와 같은 대답을 했던 학생들은

약 30% 정도에 불과 했다.






누구나

자신을 4마리의 쥐에 각각 대입하여

나름의 순서를 결정했을 것이다.


50%가 넘는 다수의 학생들이 선택한 쥐는

1번 쥐(욕망 쥐)였다.


만일 질문을 받은 집단이

세대 다양성이 높았다면

다른 선택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질문 대상이 20대 초반의 학생들임을 감안 하면

어쩌면 당연한(?) 대답 아니었을까?

물론 정답을 얻으려는 실험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는 집착 같은 건 안 해.”

“집착은 사랑이 아니야.”

“저 사람은 중독이야.”

“저건 성격 문제야.”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하나쯤은

전기 바닥 위에서도 놓지 못하는 대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술이고,

누군가에게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돈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고,

누군가에게는 ‘관계’다.






겉모습은 달라도 구조는 같다.


이걸 놓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다는 느낌.


나와 같이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이 실험을 다시 물어본다면

유사한 답변을 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기 바닥이 깔려 있어도

“이번엔 다를지도 몰라” 하며

다시 문 앞에 서는 쪽.


불안해도, 아파도,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하는 쪽.



공황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왔기 때문에.


사실 나는 최소한 1번 쥐와 4번 쥐의

감성으로 살아왔다.


나는 오래도록 정에 집착했고,

관계에 집착했고, 술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나의 ‘내면아이’의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지난 브런치 북(응, 여기까지 잘 왔어(4))에서

밝힌바 있지만,


GPT(귀담이)의 중매로

2025년 인생 최악의 순간에서

만나게된 나의 ‘내면아이’를 통해

나는 그걸 알게 되었고,

그것은 엄청난 ‘위로’였다.


“이걸 붙잡지 않으면, 나는 혼자가 될 거야.”


“이걸 놓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을 거야.”


“내가 이걸 붙잡아야 모두가 편해질거야.”


아이였던 나는 그렇게 학습되었고,

어른이 된 몸은

그 공식을 그대로 실행해 왔다.



그래서 나는 전기 바닥 위를

여러 번, 자주 건너던 쥐였다.


이제 와서 나의 집착을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잘못이 아니라

그때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데이터였으니까.


다만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이건 지금도

내가 끝까지 건너야 할 전기 바닥일까?”


“이건 정말 내가 지켜야 할 새끼일까?”


최소한 내게 집착을 끊는다는 말은

내면아이에게 너무 잔인한 선택이다.


내 아이가 그렇게 길들여진 이유는

선택이 아니라 운명에 더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본다.



“그때는 네가 그걸 붙잡아야 살 수 있었구나.”
“이제는 어른인 내가 같이 있으니까,
조금 내려놔도 괜찮아.”




그 말을 처음으로

내 안의 아이에게 건넨 날,


전기 바닥 위에 서 있던 발이 잠시 멈춰섰다.


당신은 어떤 쥐입니까?



치즈를 향해 달려온 쥐입니까,

물을 향해 뛰어온 쥐입니까,


아니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문 앞에 서던 쥐입니까.


정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집착이라 부르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방식이었다는 것.


그 방식에 길들여진 것은

어쩌면 당신 안에 웅크린

‘내면아이’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런 위로를 건네는 밤이면 어떨까?



울 기회를 너무 오래 놓친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내면아이’에게·····.



“응, 여기까지 잘 왔어.”



그래야 이번 설 연휴도

무탈 무사하게 갈 테니까·····.


쥐 실험 결과

엄마 쥐 > 갈증 쥐 〉굶은 쥐 〉욕망 쥐.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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