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기로.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옳은지' 질문하고
'다시 생각해 봐라'라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타인을 배려해서,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들려서, 아이의 자기 검열 수준은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어깨는 언제나 뭉쳐있었고 이유 모를 불안으로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어야 했고,
웃고 싶을 때 웃다가는 혼이 났고,
배가 부를 때도 끝까지 먹어야 했고,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해야 했고,
때때로 세상으로부터 결과에 대한 칭찬을 받았지만 기쁘지 않았고, 과정을 염려스럽게 바라보는 몇몇 어른들의 낯빛에서 스치는 불편함을 읽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고, 강한 척했지만 약했습니다.
최근 아버지와 대화하는 중에 알았습니다.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다시 생각해 보렴' 이 상황은 언제나-
"내가 아버지의 그림자를 건드릴 때"였고,
"아버지의 기분이 나쁠 때"였다는 걸요.
자녀를 깎아내림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해 왔다는 것을요.
진짜 세상은 저에게 대단한 걸 요구하지 않았어요.
'억지로 웃지 않아도 괜찮아.'
'배가 부르면 좀 남겨도 괜찮습니다. 즐겁게 식사하세요.'
'너무 참으면 병 됩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스스로 몰아붙이지 마세요.'
부모가 어떤 그럴듯한 검열기준을 들이댈 때
자신이 작아지고 깎여나가며 숨쉬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면, 그것이 '누구를 위한'기준인지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부모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최종 목적으로 보인다면, 그건 '그럴듯한 말로 설정된 잘못된 기준'임을 저는 엄마가 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나 알았습니다.
'스스로를 좀 더 안아주세요.'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지난 경험과 선택을 미루어 보았을 때, 자신의 감정과 선택기준을 더 믿어주셔도 됩니다. 충분히 더 잘하실 수 있습니다.'
부모가 해주지 않았던 말들을 부모보다 훨씬 낯선 상담사가 전해주었을 때 저는
한 시간 내내 흐르는 눈물을 몇 번이고 멈추지 못했습니다. 칭찬이 너무 어색하고, 스스로 안아주는 것이 불편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벅차서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완벽함은 온전함과 다르다고 해요.
결함 없고 모남 없는 상태가 아닌,
목멜듯한 어두움, 그 안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워하는 그림자조차 두 팔 벌려 조용히 안아주는 용기를 낸 상태. 늦었지만 지금 제가 찾아가는 저의 온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