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최근 연인과 함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했다. 사실 이 작품을 스크린에서 마주하기까지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연인이 어떤 영화를 보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의 첫 선택은 <폭풍의 언덕>이었고, 설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보자는 제안도 평소 장항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럼에도 결국 극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된 것은 이 영화가 곧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현재, 이미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관객 수라는 정량적 지표가 작품의 위대함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는 현상은 그리 달갑지 않다. 그러나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이른바 '메가 히트작'이 탄생할 때마다 나는 기꺼이 그 흐름에 동참하려 노력한다. 유행을 좇아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영화관 특유의 공기와 몰입감을 다시금 느끼고, 비싸진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는 경험을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이 극장에 머무는 시간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영화를 향한 지속적인 애정의 불씨로 타오르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계유정난 이후, 왕위에서 쫓겨나 강원도 영월 첩첩산중으로 유배를 온 어린 단종과 그를 감시해야 하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굴러간다. 하나는 핏빛 암투가 끊이지 않는 한양의 잔혹한 권력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의지를 잃은 어린 왕과 그를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연민의 세계다.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단종의 내면 풍경이다. 열여섯의 어린 왕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대한 권력의 폭력에 휘말려,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깊고 단절된 산골짜기로 추락한다. 기약 없는 유배 생활 속에서 마주해야 했을 심리적 고립감과 공포는 감히 가늠하기조차 춥고 막막하다. 영화의 전반부는 세상의 부조리함 속에 철저히 내던져진 한 인간이 그 압도적인 고독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그 쓸쓸하고도 불안한 고립의 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이 고립을 만들어낸 반대편에는 권력을 쥔 자들이 있다. 역사는 수양대군과 한명회를 무자비한 찬탈자로 기록하고, 대중 역시 그들을 지탄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뼈아픈 진실은, 그들 역시 결핍과 욕망을 지닌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무자비한 정치 싸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타인을 짓밟기 이전에 '내 사람을 지키고자 하는' 처절한 방어 기제가 도사리고 있다.
조선의 세조 역시 조카를 몰아내고 수많은 정적을 피로 숙청했지만, 그 끔찍한 정변의 시작점에는 벼랑 끝에서 자신과 가솔들의 목숨을 부지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 있었다. 인간은 때로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혹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악귀가 되기를 자처한다. 훗날 아들인 세종이 피를 묻히지 않고 성군이 될 수 있도록,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공신들을 자신의 손으로 모두 도륙하며 악업을 짊어졌던 태종 이방원처럼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핏빛 옥좌에 앉았던 세조조차도, 훗날 스무 살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병으로 요절했을 때는 천하를 잃은 듯 통곡하며 무너져 내렸다. 절대 권력자라는 서늘한 이름표 뒤에는, 결국 내 핏줄을 잃어버림에 절망하는 한 명의 나약한 아버지가 존재했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인간적 고뇌가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저지른 패륜과 학살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세조의 찬탈은 궁극적으로 본인의 영달을 향해 있었으며, 한명회의 잔혹함 이면에는 명문가 출신임에도 불우한 환경 탓에 늦은 나이에야 출세길에 오른 자격지심이 짙게 배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국방을 다지고 『경국대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조선의 뼈대를 세웠다는 치적을 남겼을지언정,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어린 조카를 사지로 내몰고 사육신을 비롯한 수많은 충신을 잔혹하게 도륙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비판받아 마땅한 역사의 과오다.
영화의 중후반부는 무대를 광천골로 집중시켜 권력의 폭력성에 맞서는 또 다른 방식의 저항을 보여준다. 광천골이라는 첩첩산중은 외부 세계와 완벽히 단절된 거대한 감옥과 같다. 그 안에서 촌장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은 서슬 퍼런 감시의 눈길 아래 놓여 있다.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 왕을 향한 연민과 인간적인 유대를 선택한다.
이 투박한 마을 사람들의 선택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피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타인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은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운명에 맞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는 가장 조용하고도 위대한 반항이다. 목숨을 던져 불의에 항거한 사육신의 뜨거운 피나, 평생을 숨어 지내며 지조를 지킨 생육신의 차가운 절개만큼이나,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이 인간적인 연민 역시 역사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저항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권력은 단종의 물리적인 자유를 모두 앗아갔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진실한 마음의 향방마저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닥쳐오는 운명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절망의 한가운데서 누구에게 마음을 내어줄지, 누구와 연대할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영화를 보며 인간의 연대에 대해 깊이 사유하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마주하는 '독립과 연합'의 문제로 상념이 이어졌다. 현대 사회에서 비혼과 결혼의 담론이 대표적일 것이다. 철저히 혼자이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경제적·물리적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 속 광천골 사람들이 그러했듯,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연합하려는 존재다.
결혼을 하고 누군가와 삶을 공유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의 자유를 덜어내고 숱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준 엄흥도의 선택이 그를 가장 존엄한 인간으로 만들었듯, 사랑하는 이와 엮임으로써 발생하는 삶의 불편함을 기꺼이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그 역설적인 선택 안에 어쩌면 혼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더 깊고 충만한 삶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광천골의 차가운 밤하늘 아래서 서로의 온기가 되어주었던 두 사람의 모습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먹먹한 잔상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