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헛간 remix - 혁오밴드
한 소년이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과 지원을 듬뿍 받는 외동아들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꽤나 잘 그려서 주변의 칭찬을 받곤 했다. 소년은 칭찬에 우쭐해져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당연하게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미술 학원은 조금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소년의 부모는 빠듯한 월급을 쪼개고 생활비를 줄여가며 그 비싸다는 미술 학원에 소년을 보낸다. 소년은 이런 부모의 헌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깊이 감사해한다. 그래서 꼭 부모의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캔버스 앞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그림을 그리던 그는, 그리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년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미술로 유명한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자리에는 칭찬받는 미대생 대신, 자유롭게 기타 치고 노래하며 본인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고픈 청년만이 남았다. 이제 소년보다 청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는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부모님의 기대 어린 눈빛과 걱정을 외면하는 게 힘들었지만,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왠지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음악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면 관객이 조금이라도 모일 줄 알았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세 명이 되어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음반회사에서 계약 연락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공연비를 내고 노래를 해봤자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대를 제대로 졸업했다면 그 간판으로 할 수 있는 게 뭐라도 있었겠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사회에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무언가 될 줄 알고 시작했지만, 결국 몇 년 동안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음악에 쏟아부은 시간이 전부 낭비가 되는 것만 같아 그만둘 수도 없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공연을 마치고 기타와 마이크를 정리하며 그는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자. 더 늦기 전에 부모님께 돌아가 죄송하다고 빌고 다시 뭐라도 해보자. 음악은 여기까지 하자.' 그는 부끄러움을 가득 안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이때 그는 자신이 마치 누가복음에 나오는, 그 염치없는 탕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자, 성경 속 탕자의 아버지가 그랬듯 부모님은 그를 있는 힘껏 안아준다. 게다가 고생 많았다며, 너는 탕자가 아니라 여전히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라고 말해준다.
<멋진 헛간>은 본래 혁오 밴드 정규 1집 '23'의 수록곡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정형돈의 선택을 받으며 대중의 취향에 맞게 빠른 템포의 흥겨운 컨트리 곡으로 편곡되었다. 그러나 밴드 혁오가 표현하고자 했던 원형은 이 Remix 버전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당시 그들이 추구하던 음악은 90년대 브릿팝 느낌이었고, 이 버전이 '23' 앨범의 결과 더 잘 어우러진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면 위의 썼던 글들이 이미지로 떠오른다. 더 자세하게는 혁오 밴드의 보컬 오혁이 떠오른다. 그는 선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자랐다. 지금은 중국에서 보낸 시절이 그의 음악에 좋은 영향을 끼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그는 고향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그를 외롭고 쓸쓸하게 했다. (이 감정을 느끼고 싶으면 그들의 첫 번째 ep 20을 추천한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좋아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과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교회 찬양팀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평도 받았다. 그는 음악과 미술 사이에서 항상 저울질을 했을 것이다. 그 오랜 저울질 끝에 그는 일단 한국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그렇게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홍익대 미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유로운 홍대의 영향인가 그는 화가의 길을 뒤로하고 음악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이 곡은 오혁이 음악을 시작하며 마주했을 수많은 불안과 고독, 그리고 깊은 후회의 감정을 관통한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만 들으면 이유 모를 먹먹함이 차오른다. 마치 후회로 얼룩진 내 지난날들이 세상 앞에 발가벗겨져 심판받는 기분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 너라고 뭐 다를 줄 알았니?" 스스로를 갉아먹는 환청에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쯤, 노래는 묘한 위로를 건넨다. "제가 성경에 나오는 그 탕자인가 봐요..."라는 아들의 자조 섞인 고백 뒤로, "아니야, 그렇지 않단다"라고 답하는 아버지의 따스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 가상의 대화 속에서 나는 종종 뜨거운 눈물을 쏟곤 한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오직 앞으로만 흐른다. 가끔은 여자친구가, 혹은 세상이 내 시간을 훔쳐 가는 것 같아 투정을 부리지만 사실 안다. 내 시간의 진짜 도둑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의 시간은 철저히 나의 선택으로 채워졌기에, 낭비에 대한 대가 또한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낭비한 것처럼 보이는 이 인생도, 절대자의 시선에서 보면 결국 다 비슷한 모습 아닐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우리는 모두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까.
정말 다행인 것은, 이런 못난 나조차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존재 덕분에 나는 후회로 범벅된 이 인생을 다시 살아낼 용기를 얻는다. 노래 속 화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멋진 헛간'을 짓고 곡식을 가득 채웠으나, 어느새 그 곡식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 그 헛간은 부모님의 피땀 어린 지원으로 지어졌을 것이다. 비록 그가 헛간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을지 모르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인생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아무리 처절하게 무너져도 따뜻한 밥 한 끼 내어주며 "왔니?" 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그 인생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